안녕하세요.

누가 저한테 로베르 피레스라는 축구선수의 가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답하겠습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 지네딘 지단과 동격으로 기용됐던 유일한 선수입니다.”

물론 한 문장으로 압축하다 보니 좀 과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렇게 답을 했는지에 대한 근거를 들겠습니다.

지단이 참가한 메이저대회에서 프랑스대표팀의 주 대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로 96 : 4-3-1-2 / 지단이 1.
1998월드컵 : 4-3-1-2 혹은 4-3-2-1 / 3명의 미드필더 위에 지단이 공격형 미드필더, 유리 조르카에프가 처진 공격수.
유로 2000 : 4-2-3-1 & 4-3-1-2 / 4-2-3-1에서는 앙리와 조르카에프가 날개, 4-3-1-2에서는 앙리가 투톱의 일원. 지단은 공격형 미드필더.
2002월드컵 : 4-2-3-1 / 지단이 부상으로 결장한 초반 2경기에는 조르카에프, 미쿠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
유로 2004 : 브라질식 (중앙지향적인) 4-4-2 / 지단이 왼쪽 미드필더, 피레스가 오른쪽 미드필더.
2006월드컵 : 4-2-3-1 / 지단이 공격형 미드필더.

지단이 참가한 여섯 번의 국가대항 메이저대회에서 지단과 동격으로 기용된 선수는 유로 2004의 피레스가 유일합니다.

# 1998월드컵 조르카에프는?

1998월드컵 프랑스를 ‘크리스마스트리’로 불리는 4-3-2-1 대형으로 흔히 말하지만, 당시 조르카에프는 지단과 같은 역할이기보다는 1.5톱으로 대회 무득점에 그친 (만약 지금이었다면 가짜 공격수로 조롱을 받았을) 원톱 스테판 기바르크를 보좌하는 공격수에 가까웠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가동하지 않은 경기를 보면 1998월드컵에서 지단과 조르카에프의 역할 차이는 더 확연합니다.

프랑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개막전에서 4-2-3-1을 쓰면서 지단을 공격형 미드필더, 앙리와 조르카에프를 날개로 기용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조르카에프 없이 앙리와 뒤가리 투톱 밑에 지단을 배치한 4-3-1-2를 썼고, 지단이 징계로 결장한 파라과이와의 16강에서는 전형적인 날개인 베르나르 디오메드(당시 AJ 오세르)를 왼쪽, 조르카에프를 오른쪽 미드필더로 기용한 4-4-2를 들고 나왔습니다.

만약 조르카에프가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원톱 밑의 2인으로 동격으로 취급됐다면 지단이 없을 때 단독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됐겠지만, 적어도 1998월드컵 본선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 피레스의 짧은 전성기

조르카에프는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으면서 중간적인 역할인 처진 공격수라는 개념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프랑스대표로 A매치 82경기 28골을 기록하면서 1998월드컵과 유로 2000 우승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피레스는 얼마나 대단했기에 조르카에프도 받지 못한 '지단과 같은 역할로 동시 출전하기'라는 대접을 받았을까요?

피레스는 1998월드컵과 유로 2000 우승 선수단에 포함됐지만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속팀 아스널에서 2001/02시즌부터 2005/06시즌까지 5년 연속으로 시즌 10골 이상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구가하자 대표팀에서도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아스널 전성기 5년 득점기록

2001/02시즌 : 45경기 13골 (리그 28경기 9골 15도움)
2002/03시즌 : 42경기 16골 (리그 26경기 14골 3골)
2003/04시즌 : 51경기 19골 (리그 36경기 14골 10도움)
2004/05시즌 : 47경기 17골 (리그 33경기 14골 4도움)
2005/06시즌 : 48경기 11골 (리그 33경기 7골 4도움)

이후 다시는 시즌 10골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고, 2004년 국가대표팀을 은퇴하기 전까지 전성기의 메이저대회였던 2002월드컵과 유로 2004에서 전자는 부상으로 불참, 후자는 준준결승 탈락으로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2006년부터 현역 은퇴를 한 2011년까지 비야레알 CF와 애스턴 빌라에서 뛰었지만 5년 동안 클럽 경기의 모든 득점을 합해도 19골(리그 13골)에 불과해서 어느덧 현재에는 잊힌 선수가 됐습니다.

종종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피레스라는 선수가 예전에 잘했다는데 어느 정도였나요?”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굳이 선수생활의 처음과 끝까지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강렬했던 전성기의 가치를 어느 정도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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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크리스티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