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러시아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이후로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첼시를 세계최고의 클럽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그러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첼시로 데려오고 싶어했던 선수는 바로 히카르도 카카(Kaka)다.
당시 그의 영입을 위해 조세 무리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로만은 무리뉴에 반대에 부딪혀 카카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카카의 영입에 찬성하지 않았던 무리뉴가 떠난 이후로 로만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매년 이적시장에서 수 많은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카카는 첼시의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레알마드리드를 선택하였고,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카카영입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카는 레알마드리드에서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그 곳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마침내 히카르도 카카를 얻게다는 생각을 포기해버린 것일까?


진짜 카카를 얻을 수 없다면, 제 2의 카카를 데려와서 직접 성장시키자.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카카에 대한 짝사랑은 2011년 3월 제 2의 카카라고 불리우던 루카스 피아존을 영입하게 만들었다.

▶ 쿠리치바(Coritiba)



△ 어린 시절 루카스 피아존과 동생 줄리아나 피아존


1994년 1월 상파울로(Sao Paulo)에서 태어난 루카스 도밍게스 피아존(Lucas Domingues Piazon)은
수많은 브라질의 축구재능들(지쿠,호나우딩요,호빙요 등)과 마찬가지로 풋살로 축구세계에 입문했다.


루카스가 어렸을 때 그의 부모님은 상파울로에서 파라냐(Parana)로 이사하였고, 피아존은 8살에 나이로
쿠리치바의 풋살팀에서 들어가 플레이 하게 된다. 3년후인 11살에 이르러 실내축구장에서 벗어나 잔디경기장에서
풋살이 아닌 축구를 시작하였고 그 것은 루카스의 성장에 있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 코리치바 시절 루카스 피아존




코리치바에서 피아종은 기술과 킥, 드리블, 헤딩, 위치선정, 골결정력등 모든면에서 또래들보다 평균이상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피아존의 우수한 몸놀림은 다른 클럽에 관심을 끌었고 불과 14살의 나이에 코리치바에서 진귀한 보석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쿠리치바는 루카스에게 있어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아니였다.

▶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Atletico Paranaense)






유소년계약의 법적 허점(즉, 쿠리치바와 루카스는 정식프로계약을 한 상태가 아니였다)을 활용하여 아틀레티코 파라나엔시는
2007년 루카스에게 보다 유리한 계약을 제시했다. 피아존은 보다 조직적인 클럽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에
파라나엔시와 사인하였다.




루카스 피아존의 선택은 성공이였다.


새로운 팀에서 피아존은 더 성장할 수 있었다. 14살이란 나이에 비해 뛰어나게 발달한 신체와 최고수준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피아종은 지역 카테고리의 대회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또한 대부분의 대회에서 최고득점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파라나엔시를 이끌고 U-15 코파 브라질에 결승전에 도달하면서 피아존은 팀내에서 스타가 되었다.
결승전에서 상파울루FC를 만난 피아존은 분발했지만 아쉽게도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피아존을 상대한 상파울로는 그의 활약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곧이어 영입을 제안하였다.








▶ 상파울로 (Sao Paulo)






놀랍게도 루카스의 부모님들은 루카스가 이적을 원한다면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가 승낙하면 그는 쿠리치바에 부모님을 뒤로하고 가족을 떠나야했다.
상파울로는 파라나엔시보다 훨씬 더 큰 클럽이며 수많은 재능들이있었다. 피아존은 파라나엔시에서는 스타였지만
상파울로에서는 큰 연못에 사는 작은 물고기가 될 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14살의 피아존의 성격상 그는 피하지 않고 경쟁을 통해 상황을 이겨나가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상파울로는 2008년 루카스에게 정식으로 계약을 제시하며 파라나엔시로부터 피아존을 데려왔다.



△ 상파울루에서 뛰고 있는 루카스 피아존






곧 이어 피아존은 U-15 나이키컵 남미예선에서 상파울로를 대표하여 출전하였고,
첫 단계에서 상파울로는 PAEC, 코리치바, 그레미우에 대한 승리와 5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상파울루의 결승전 진출을 도왔다.
그 결과 상파울로는 대회에서 무패를 이뤄내었고 상파울로는 나이키 컵 국제 토너먼트의 참가자격을 확보하였다.


나이키 컵 국제토너먼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컵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전세계 9천여개의 클럽이 참여하고 있으며 정식 국가대항전은 아니지만 유소년월드컵이라고도 말할 수있는 대회였다.




2009년 8월, 피아존은 주장완장을 차고 상파울로를 이끌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컵에서 경합을 펼치게 되었다.
상파울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1차전에서 3-0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후 감바 오사카와의 경기에서 5-2로 승리하였지만
파리 생제르망에게는 2-1패배를 맛봐야했다. 그리고 아스날을 상대로 2-1로 패했다.


2번의 승리와 2번의 패배로 상파울로는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맞붙게되었고 루카스의 두골에 힘입어
3-0승리를 거뒀다. 준결승에서 라이트 투 드림 아카데미를 만난 상파울로는 2-0으로 승리해 프리미어컵 결승전에 진출하였고
베르더 브레멘을 상대로 맞이한 결승전에서 루카스는 득점하지 못하였지만 상파울로는 챔피언이 되었다.



△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피아존은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피아존은 이 대회기간동안 5골을 넣어 대회최고선수(MVP)로 선정되었다. 이로인해 유럽클럽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고
아버지인 안토니오 카를로스의 말에 따르면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시티가 관심을 표명했다고 한다.




우승컵을 가지고 브라질로 돌아온 피아존은 브라질 15세이하 대표팀에 발탁이 되며 2009 남미 U-15 챔피언쉽에 출전한다.
볼리비아에서 열린대회에서 피아존은 브라질의 노란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하였으며 대회기간내내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브라질은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피아존은 7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이 대회기간동안 첼시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조언자이자 스카우터인 피엣 데 비세르는 피아존을 지켜보았고
아스날과 유벤투스, AC 밀란 그리고 슈많은 유럽클럽들 또한 루카스 피아존을 주목하고 있었다.



△ 2009 남미 U-15 챔피언쉽에서도 큰 활약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유럽스카우터들에게 각인시켰다.


"나는 그가 오른발로 드리블을 한 뒤 왼발로 슈팅을 쏴 득점하는 것을 봤습니다."
"또한 중앙에서 오른발로 득점하는 것과 헤딩으로 득점하는 것도 봤지요."


"그는 어떤위치에서든 모든 종류의 득점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가 매우 유망한 선수라는 사실을 말했죠. 매우 가능성이 있습니다."


"겨우 15살일때 그를 처음봤습니다."
"그는 작고 날씬했지만 매우 빠르게 플레이하고 있었고 그의 나이에 비해 매우 지능적이였습니다."


"나는 좋은선수들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선수들은 어떤 특별함이 있는 선수입니다."
"공과 함께하는 움직임과 골을 넣는 능력 그리고 축구지능말입니다."




<2009년 피엣 데 비세르(Piet de Visser) 첼시스카우터>

▶ 유벤투스 (Juventus)

루카스 피아존은 상파울로 1군팀에서 뛴적도 없고 성인무대 데뷔도 이뤄내지 못했지만 유스레벨에서 국내 외 무대를
가리지않는 활약으로 인해, 그리고 그의 외모와 클럽이 상파울루라는 이유로 "뉴 카카(New kaka)"라는 닉네임을 얻는다.


뉴 카카를 향한 유럽클럽들의 움직임중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다.


2010년 5m의 첫영입제안은 상파울로에 의해 거절되었지만 유벤투스의 마로타단장과 파비오 파라티치, 그리고 아넬리는
그이상의 오퍼를 할 것을 합의했으며, 상파울로는 향상된 오퍼를 받아들여 팀간 협상은 마무리가 되었다.


루카스 피아존과의 마지막 개인협상절차만 남겨둔 유벤투스는 2011년 1월 피아존과 그 가족들을 토리노로 초청한다.




피아존은 부모님과 에이젼트가 유벤투스 보드진과 계약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동안, 비노보 트레이닝센터를 둘러보았고
유벤투스 선수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으며 유벤투스와 로마와의 세리에 홈경기를 관전하기도 했다.


모든 초청일정을 마치고 브라질로 돌아가기전 피아존은 자신이 유벤투스의 선수가 되어서 자랑스럽다고 인터뷰를 한다.



△ 유벤투스로 초청된 루카스 피아존






"오늘 전 유벤투스 선수들과 만남을 가졌어요."
"펠리페 멜루와 아마우리는 저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왔고, 델피에로와 사진을 찍었죠."


"유벤투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럽중하나이며, 유벤투스의 선수가 될 수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저의 꿈과 목표는 유벤투스 팬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유벤투스의 초청을 받아 이탈리아로 와서>






루카스 피아존이 유벤투스와의 만남을 공식적으로 가진 터라 피아존의 유베행은 기정사실화 되어있었다.
비록 브라질국내법상 18세가 되지못해 당장 이적할 수는 없지만, 18살이 되는 즉시 이적한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공식 이적발표만이 있을거라 예상되었지만 유벤투스와 피아존. 즉 선수와 클럽간의 개인협상내용중
연봉등 세부적인 사한에 있어서 둘사이에는 커다란 의견차이가 발견되어 협상은 끝없이 지연되었다.




이는 유벤투스가 먼저 나섬에 따라 기회를 잃어버렸던 첼시에게도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생긴 셈이였다.
첼시는 협상이 지연되는 틈을 타 상파울로와 이적료 협상을 마쳤고, 루카스 피아존과 개인협상을 할 수있는 권한을 얻었다.


첼시는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최측근중 하나인 스카우터 피엣 데 비세르를 통해 지켜봐왔고
선수연봉과 이적료에 있어 유베의 연봉체계보다 여유로웠기에 유벤투스와는 달리 개인협상마저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유벤투스로서는 선수측의 과도한 연봉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첼시에게 루카스 피아존을 넘겨야만했다.






"우리는 사실 이러한 조건으로 피아존과 사인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이러한 어린선수에게 1m에 달하는 연봉을 지급한다는 것은 비윤리적인 일이었습니다."

"그의 미래의 동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아직 프로계약도 맺지 못한 선수들이 말입니다."


"피아존의 요구를 받아들이지로 않기로 한 우리의 결정을 비난하는것은 위선적인 행동입니다."


<피아존과의 개인협상이 결렬된 후 유벤투스의 마로타 단장>






하지만 루카스 피아존은 첼시이적이 완료된 이후 유벤투스가 아닌 첼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다르게 말했다.
언론에서 말하는 연봉협상 문제가 아닌 자신의 미래에 있어 축구스타일의 문제였고 선호의 문제였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탈리아와 잉글랜드 축구를 봤어요. 두 나라의 축구를 비교해보고 내게 있어 최고의 선택은 잉글랜드라고 결정을 내렸죠."
"난 항상 유럽에서 뛰길 원했고 잉글랜드가 항상 1순위 였습니다. 나는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많이 봐요."

"첼시가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알게 된 이후로 저는 그들이 어떻게 플레이 하는지 배우기 위해 항상 첼시의 경기를 봤어요."



"피엣 데 비세르는 내가 플레이 하는 방식을 좋아하고 내가 잉글랜드축구에 잘 적응할수 있을거라 말했어요."
"이것이 내가 첼시에 가는 이유중 하나에요. 나는 유럽의 수 많은 리그중에서 잉글랜드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첼시로 이적한 이후 처음으로 훈련에 참여한 뒤>






▶ 첼시 (Chelsea)






루카스 피아존과 첼시와의 이적합의 공식발표는 2011년 3월 26일 이뤄졌다.


첼시는 상파울로에게 이적료 10m을 지급하였고 선수의 이동은 피아존이 18세가 되는 2012년 1월이 될 것이라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5년 반이였고 루카스 피아존이 성장하고 발전하며 준비하는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였다.


일부 사람들은 성인무대도 데뷔하지 않은 선수에게 10m을 투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밥티스타가 2003년 1.7m에 세비야로 합류하는 것이나, 카카가 5m에 밀란에 합류하던 시절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지난 여름 21살의 레안드로 다미앙에 대한 토트넘의 10m제안은 거절되었으며, 네이마르는 40m을 거절했다.
게다가 상파울로는 루카스 모우라에 대해 70m의 바이아웃을 걸어두고있다. 첼시는 잉글랜드무대에서
실패했던 브라질공격수들인 호비뉴, 알폰소 알베스, 조와같은 길을 걷지않기 위해 빠른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 2011 남미 U-17 선수권대회에서도 피아존은 브라질 청소년대표팀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첼시 이적합의는 루카스 피아존이 2011 남미 U-17 선수권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도중 발표되었다.
피아존은 남미 선수권대회에서 3골을 기록하며 브라질이 대회우승을 차지하는데 핵심역할을 했으며
또한 브라질대표팀이 6월에 열리는 피파 17세이하 청소년 월드컵 출전권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피아존은 브라질 U-17대표팀의 핵심멤버로서 당연하게도 17세이하 멕시코 청소년월드컵에 뽑혔다.
브라질 U-17대표팀 감독 에메르손 아빌라(Emerson Avila)는 피아존에 대해 앞으로 대단한 일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피아존이 브라질대표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인건 올해초 에콰도르에서 열린 남미청소년선수권대회입니다."
"그는 선수로서 성장하고 있어요. 날카로우며 에어리어안에서 더 나은 존재감을 보입니다."
"미드필더의 특성을 가지고 도움을 주는 스트라이커입니다."


"피아존은 경기흐름을 잘 읽을줄 알며 빠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술적으로 세련되고 양발로 훌륭한 마무리를 짓죠."




<에메르손 아빌라(Emerson Avila)브라질 감독. 피파 u-17 청소년 월드컵이 열리기전에 가진 인터뷰中>




멕시코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서 루카스 피아존과 에드밀손, 아드리안의 삼각편대를 필두로한 브라질은
2003년 핀란드 대회이후 6년만이자 통산 4번째 우승에 도전하였다.




△ 아쉬운 성적을 거둔 멕시코 17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덴마크와 호주, 코트디부아르를 만난 브라질은 2승1무의 성적으로 손쉽게 통과했고 16강에서 에콰도르,
8강에서 일본을 만났으나 어렵지않게 4강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4강에서 우루과이에게 완패하며 2011 u-17 월드컵에서는
아쉽게도 4강에 만족해야만 했다. 루카스 피아존은 대회기간 동안 1골 2어시를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브라질 청소년대표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 루카스 피아존은 2011년 7월 3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14년 브라질월드컵 대륙별 예선 조추첨에 추첨자로 뽑히는 영광을 얻었다.


피아존은 브라질 최고의 신성들인 네이마르,간수와 같이 자갈로, 지코, 베베토, 호나우두, 카푸등 브라질의 축구레전드들과
한자리에 섰으며, 그 것은 즉 루카스 피아존이 브라질의 기대를 받는 혹은 앞으로 브라질을 대표할만만 신성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 2014 브라질 월드컵 대륙별 조 추첨식에 브라질의 미래로서 초청된 루카스 피아존






모든 일정을 마친 루카스 피아존은 상파울로로 돌아가 2012년 1월 첼시로 이적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루카스는 상파울로에서 훈련을 하며 18세가 되는 1월이 될때까지 브라질에 머무르며 그 이전 첼시에 합류할 계획이 잡혀있지 않았으나
상파울로의 배려와 첼시구단의 요청에 의해 2011년 9월, 예상보다 네달이나 빠르게 첼시에 합류할 수 있었다.


첼시의 트레이닝센터인 코밤에 초대되어 계약을 직접 확인하고, 첼시에 시설들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피아존에게
매니져 안드레 비야스-보아스가 훈련에 참여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였다.
단지 시설과 계약을 확인하러 런던으로 떠났던 이 어린소년은 훈련에 대해서 어떠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그가 신던 축구화조차 없었다. 하지만 클럽은 트레이닝센터내에서 맞는 축구화를 찾아주었고 그의 첫훈련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루카스 피아존은 그의 아버지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출신이였기에 EU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영국취업비자를 신청하지
않아도 된 피아존의 런던 합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마침내 첼시에 합류할 수 있었다.
첼시에 합류한 이후 그는 런던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훈련은 첼시유스와 리저브팀에서 받고 있다.



△ 아스날과의 친선경기에서 첼시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비공식 첼시 데뷔전을 치뤘다.




피아존은 2011년 10월 24일 아스날 유스팀과의 친선경기에서 등번호 11번을 부여받고 비공식 데뷔전을 치뤘다.
그리고 2012년 1월이 되기전 피아존은 11년 11월 11일 FA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이적승인을 받아 첼시선수가 되었다.


이적승인이 나지않아 친선경기외에 첼시소속으로서 경기를 나설 수없었던 피아존은 11월 13일 첼시 u-18팀의 멤버로서
공식적인 첼시데뷔전을 치뤘고, 클럽내에 주목받는 유망주로서 실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는 런던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는 같은 브라질리언인 하미레스, 알렉스가 있어서 즐겁고, 클럽안에서 친절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물론 다비드 루이즈가 이곳에서 가장 친한 친구죠. 그는 아주 웃기고, 항상 농담을 하고,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모두들 제가 여기서 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시즌 저의 중요한 목표는 가능한 많은 유스 게임과 리저브게임을 소화하고, 유스컵에서 우승하는 것입니다."


첼시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원하는 대로 이 젊고 재능있는 브라질리언이 첼시의 카카가 될지 아니면 잉글랜드에서
실패를 겪었던 많은 브라질선수와 같은 길을 걸을지는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18개월, 혹은 1년이 지나면 이 선수를 프리미어리그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그는 화가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것은 자기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그는 최고가 되고 싶어하며 뭔가 제대로 되지않으면 그는 화를 냈죠."


"이 것은 좋은 것입니다. "
"많은 젋은 선수들은 어리석은 짓을 해도 난 상관없어라고 말하곤 하죠. 그저 'OK'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피아존은 이기지 못하면 화를 내며, 그것은 프로가 되는데 있어 좋은 징조입니다."
"난 이러한 좋은 멘탈리티와 성격을 가진 선수를 찾아 매우 행복합니다.그리고 첼시로 데려올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될 것은 그는 바로 첼시의 미래를 위한 선수라는 것입니다."




<피엣 데 비세르,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조언자이자 루카스 피아존을 첼시로 데려온 장본인>





=================== by. 첼시마드리드님 블로그 자료 펌.

지난시즌 첼시의 유스 FA컵 우승의 1등 공신으로 지목된 피아존은

1112 첼시 올해의 유스선수상을 수상했음

앞으로 기대가 되는 선수.

유스경기에선 왼쪽 윙포로 나오곤 했는데

이번 프리시즌에는 두번 연속 전방 공격수로 나왔네요

올시즌 디마테오가 1군으로 피아존을 올렸다던데

뭐 그래도 u21 왓다갓다 할거같긴 하지만요.

칼링컵같은데서 기회좀 받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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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크리스티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