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빛과 몸빛이 검은 흑돼지가 우리나라 토종 돼지


곱슬곱슬 휘감긴 털의 빛깔과 몸 전체가 숯덩이처럼 새까만 흑돼지는 우리나라 토종 돼지지만 지금은 제주도와 지리산 일대에서만 자라고 있다. 특히 제주도 흑돼지 '도새기'는 '통시' 혹은 '도통'이라는 울타리에서 기른 까닭에 한때 '똥돼지'라 불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지금의 제주도 흑돼지를 그렇게 기르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흑돼지는 한라산 오름과 지리산 자락에 그대로 풀어 기르고 있다. 흑돼지의 맛이 일반 돼지와 다르게 육질이 진달래꽃잎처럼 붉고 싶으면 씹을수록 쫄깃쫄깃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토종 흑돼지는 일반 돼지에 비해 얼굴이 좁고 주둥이가 길며 쫑긋한 귀를 가지고 있으며, 다리가 짧고 몸집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흑돼지는 체질이 아주 강해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모성애 또한 강하다. 게다가 근육 안에 지방질이 많아 살코기가 몹시 부드러우며, 콜레스테롤은 낮고 필수 지방산 함량은 높은 편이다.

운전 오래 하는 사람에게 보약 같은 돼지 살코기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에 "돼지고기는 성질이 차고 맛은 달며 그 기름기에는 약간의 독이 있다"고 씌어 있다. 이어 "돼지고기는 허약한 사람을 살찌게 하고 음기를 보하며, 성장기의 어린이나 노인들의 허약을 예방하는데 좋은 약이 된다"고 되어 있다.

게다가 "밤에 식은땀을 흘리고 오후에 미열이 나며 간혹 기침, 가래가 생기고 성질이 조급해지는 허약병에는 돼지 살코기를 푹 고아 오랫동안 먹으면 아주 좋다, 기력이 쇠한 노인이나 성장기의 허약 아동, 심한 빈혈 등에는 멧돼지의 생피를 마시고 땀을 내면 기력이 보충된다"고 나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먼지가 많은 곳에서 고된 일을 하거나 탁한 공기 속에서 운전을 오래하는 사람들은 틈틈이 돼지 살코기를 구워 먹는 것이 좋다. 돼지 살코기가 피로를 풀어주고 몸 속에 쌓인 먼지 등을 해독시켜 주기 때문이다. 또한 아기를 낳은 뒤 몸이 약해져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산모들에게는 돼지 족발을 자주 먹이면 젖이 잘 나온다고 한다.

나는 어릴 때 빈혈이 아주 심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조례 때 운동장에 오래 서 있으면 갑자기 식은땀이 출출 흐르다가 어느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대로 넘어지곤 했다. 그때 내 어머니께서는 돼지뼈를 하루 정도 푹 고아 그 국물을 마시게 했다. 그렇게 돼지뼈를 고운 뽀얀 국물을 며칠 동안 마시고 나면 빈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제주산 흑돼지의 맛의 비밀은 맑은 물과 맑은 공기

"저희 집은 제주도 오름에서 한라산의 맑은 물을 마시며 자란 제주산 흑돼지만 취급해요. 그리고 냉동육은 쓰지 않고 생고기만을 고집해요. 흑돼지의 쫄깃쫄깃한 참맛은 생고기에서 나오거든요. 한번 드셔 보세요. 언뜻 비계가 많은 것으로 보이지만 쫄깃쫄깃한 비계를 씹는 느낌과 고소한 맛이 그만일 거예요."

지난달 1일(일) 저녁 무렵, 섭지코지(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신양리에 있는 해안, TV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81), 영화 <단적비연수>(2000) 촬영지)에 갔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제주산 흑돼지 생구이 전문점 '대청마루'.

이 집 주인 양명선(44)씨는 "제주산 흑돼지의 맛이 좋은 것은 우리나라 토종 돼지인 흑돼지를 한라산 오름 곳곳에 자연 방목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씨는 "제주산 흑돼지는 돼지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며 "특히 검은 털이 박혀 있는 흑돼지의 비계는 씹으면 씹을수록 더욱 고소한 맛이 난다"라고 귀띔한다.

기자가 그 까닭을 묻자 양씨가 "제주산 흑돼지도 먹이는 사료는 일반 돼지와 꼭 같다"며 "한라산의 맑은 물과 맑은 공기 때문이 아니겠어요?"하며 빙긋이 웃는다. 이어 "돼지고기의 맛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돼지와 적게 받은 돼지에서 차이가 나는데, 제주산 흑돼지는 오름에 놓아 기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제주의 맛은 흑돼지 생구이 속에 숨어 있다

차림표에는 흑돼지 삼겹살 1인분 8000원, 흑돼지 주물럭 1인분 8000원이라고 쓰여있다. 양씨에게 흑돼지 삼겹살을 시켜놓고 식당 안을 휘이 둘러본다. 지난해 7월 초에 처음 문을 열었다는 이 집은 돼지고기집 치고는 너무나 깔끔하고 깨끗하다. 커다란 유리창에 점점이 비치는 고깃배의 불빛들도 곱고 아름답다.

양씨에게 소주부터 먼저 한 병 달라고 하자 "같이 가져갈게요" 하더니, 이내 밑반찬 서너 가지와 흑돼지 삼겹살을 푸짐하게 들고 나온다. 갓김치, 양파조림, 시금치무침, 마늘, 파릇파릇한 상추, 잎사귀가 노란 배추, 파저리, 무쌈, 굵은 소금이 뿌려진 참기름, 속살이 벌건 흑돼지 삼겹살 등이 첫눈에 보기에도 맛깔스럽게 여겨진다.

동그란 홈이 파인 시꺼먼 불판 위에 꽤 두텁게 보이는 흑돼지 삼겹살을 올리자 '치지직~' 소리를 내며 고들고들하게 익어가기 시작한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흑돼지 삼겹살을 무쌈에 싸서 입에 넣자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깊은 맛이 배어난다. 다시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참기름에 찍은 흑돼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입에 넣고 몇 번 씹자 그대로 사르르 녹아내린다.

검은 털이 송송송 박힌 두터운 비계가 쫄깃하게 씹히면서 내는 고소한 맛 또한 기막히다. 순식간에 소주 한 병과 흑돼지 삼겹살 3인분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나자 양씨가 쌀밥 한 공기와 된장찌개를 내놓는다. 새우, 꽃게, 조개 등 해물이 많이 들어간 제주도 된장찌개의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맛도 그만이다.


제주도 서귀포 대포동 앞바다에 떠있는 고깃배의 불빛을 바라보며 맛보는 제주산 흑돼지 생구이의 그 기막힌 맛! 그 곱고 아름다운 풍경과 쫄깃한 흑돼지 삼겹살의 깊은 감칠맛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제주의 맛! 그래. 제주의 참맛은 그 흔하디 흔한 감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한라산 오름에서 기른 흑돼지 생구이 속에 숨어 있다.

☞가는 길/ 서울-제주공항-서귀포 쪽 99번 도로-중문동-12번 도로 좌회전-대포동-흑돼지 생구이 전문점 '대청마루'

Posted by Mr크리스티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