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우생순은 우리!

2004년 핸드볼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덴마크와 연장, 재연장, 승부 슛으로 이어지는 접전을 펼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여자 핸드볼팀의 힘겨웠던 올림픽 출전기를 영화로 만들어 당시 비인기종목에 대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후 비인기종목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이 영화의 제목이 거론됐고 영화제목의 축약어인 ‘우생순’이라는 말이 어느덧 비인기종목의 고유명사처럼 쓰이게 됐다. 그런데 영화의 인기를 안고 얻었던 핸드볼에 대한 반짝 관심조차 부러웠다는 선수들이 있다. 한국스포츠의 진짜 우생순, 대한민국 하키대표팀의 얘기다. 남녀 실업팀을 합해 10팀밖에 안 되는 현실 속에서 세계 통틀어 남녀 각각 12개국 밖에 참가하지 못하는 올림픽에 동반진출을 하게 된 한국남녀하키대표팀, 런던에서 펼쳐 보일 우생순을 꿈꾸며 오늘도 그들은 스틱을 꽉 쥐고 필드를 가른다.

  • 이유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 사진도현석 작가
하키 대표팀이 연습하는 모습 하키 대표팀이 연습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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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키바보들이 만든 2초의 드라마

비인기종목이기에 더욱 올림픽 출전이 절실한 하키는 남녀동반 출전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여자대표팀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을 놓치고도 아시아에 출전권이 한 장 더 배분이 되며 운이 좋게도 올림픽 출전권을 비교적 수월하게 획득한 반면, 남자대표팀은 그동안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으로 보너스처럼 받아온 올림픽 출전권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4위에 머무르는 바람에 획득하지 못했다. 결국 올림픽 예선 1위라는 어려운 과제를 떠 안은 채 올림픽의 해를 맞이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남자하키가 부진한 이후 코칭스태프는 3번이나 물갈이가 됐고, 현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꾸려진 것이 지난해 12월15일, 올림픽 예선을 불과 3개월여 남겨둔 시점이었다. 촉박한 시간에, 어려운 상황이 겹친 남자하키는 모든 힘을 뭉쳐보기로 했다. 한국남자하키의 양대 산맥인 김해시청과 성남시청의 감독이 감독(김윤동)과 코치(신석교)로 힘을 모으고, 한국하키에서 경험과 실력으로 한 손에 꼽히는 선수들이 모두 대표팀에 합류했다. 유럽파 유효식, 이남용을 비롯해 맏형 여운곤부터 막내 강문권, 강문규 쌍둥이 형제까지,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의지가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하키 남자대표팀

감독과 코치로 대표팀을 이끌게 된 김윤동감독과 신석교코치는 라이벌관계의 두 팀을 이끌면서 18년간 사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던 관계였다. 그러나 3개월 동안의 기적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한 두 지도자는 라이벌이 아닌 동료가 됐다. 상대분석과 전략전술, 그리고 훈련까지 늘 함께 했다. “오죽하면 우리끼리 하키바보가 됐다고 말 할 정도였다. 하키만 생각하고, 하키만 했다”며 당시의 절박함과 노력을 김윤동감독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3개월이라는 시간 때문이었다. 체력훈련과 전술훈련을 병행하면서 상대전력분석까지 코칭스태프와 선수가 모두 함께 만들어나갔다. 직접 전술을 수행하고, 상대방을 상대하는 선수들에게도 과제를 내준 후 다시 회의를 통해 새로운 전술 짜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들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한 경기 한 경기를 살얼음판을 걷듯 결승까지 올라가 예선경기에서 1 대 1로 비겼던 홈팀 아일랜드를 올림픽출전권이 걸린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아일랜드 대통령까지 경기장 찾아 응원할 정도로 열기가 드높았던 경기장에서 홈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뒤로 한 채 한국선수들은 뛰고 또 뛰었다. 결국 경기종료 8초 남겨두고 결승골이 들어갔지만 비디오판독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디오판독을 통해 ‘한국의 골’이라는 판정을 내려진 뒤 남은 시간, 2초. 휘슬이 울리고 한국은 올림픽 예선 1위로 런던행 티켓을 얻어냈다.

이들이 만들어낸 기적,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미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짠 시나리오대로, 훈련한대로 했던 것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한 경기에서 단 한번만 쓸 수 있는 비디오판독도 마지막에 쓰자고 약속한 대로 활용했고, 바로 그 비디오판독이 한국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안겨줬던 것이다. 외국언론에서조차도 이런 드라마는 없었다고 보도될 정도로 한국남자하키는 올림픽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세계를 감동케 했다.

한국하키가 건재한 것은 비인기 종목이라는 한(恨) 때문
하키 남자대표

이제 남자하키는 또 다른 기적을 준비하고 있다. 저변과 인프라도 열악하지만 한국하키는 강한 체력과 스피드면에서 큰 강점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남자대표팀은 손발을 오랫동안 맞춰왔던 선수들이 올림픽에 함께 한다. 상대골문 앞에서는 언제든지 슛을 할 수 있는 유효식과 이남용, 페널티코너 담당 장종현과 남현우, 전술의 심장부 역할을 담당하는 숨은 일꾼 홍은성, 이승일, 차종복, 그리고 네 번째 올림픽 무대를 밟는 최고령 여운곤까지, 경험과 실력 모두 한국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한국선수들에게는 다른 나라선수들이 갖고 있지 않은 한(恨)이라는 비밀병기가 있다. “한국하키가 건재한 것은 비인기종목이라는 한(恨)때문인 것 같다. 국제대회에서 경기를 하다보면 꼭 성취하겠다는 마음이 어디선가 불끈 솟아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곤 한다”고 김윤동 감독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에서나마 주목 받은 종목이 하키다. 그마저도 못나가면 국민들의 조그만 관심조차 그들의 몫이 아니다. 때문에 이들에겐 메달이 절실하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세계에서 하키를 잘한다는 12개국이 참가해 두 개조를 나눠 조별리그를 한 후 각 조 1, 2위가 4강에 오른다. 한국은 세계최강 네덜란드와 독일, 그리고 벨기에, 뉴질랜드, 인도와 B조에 함께 편성돼 준결승 진출을 위한 피말리는 승부를 펼쳐야 한다. 벨기에, 뉴질랜드, 인도는 한국과 실력이 비슷해 이 세 경기에 승부를 건다는 전략이며, 네덜란드와 독일은 객관적으로 넘어야 할 벽이지만 세계최강팀도 한국의 독기를 무서워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체력을 기반으로 한 더 빠른 공격으로, 끈길긴 수비로, 그리고 페널티코너의 정확한 성공으로 높은 벽들을 넘어볼 계획이다.

여자하키, 역습만이 살길이다.

열악한 환경과 올림픽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여자하키라고 다를 게 없다. 여자부 A조에 속한 한국은 세계1위 네덜란드를 비롯해 영국(세계 4위), 중국(세계5위), 일본(세계 9위), 벨기에 (세계16위)와 험난한 조별리그를 치러야 한다. 현재 8위에 올라있는 한국으로서는 모든 팀이 강적이다. 여자하키의 임흥신감독은 한국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데 중점을 두고 훈련을 하고 있다. 한국여자하키의 가장 큰 강점은 빠른 역습, 한국의 역습공격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세계하키강국들이 알면서도 당하는 가장 무서워하는 전술이다. 이 역습공격은 체력이 기본이 돼 있어야만 한다. 임흥신감독의 훈련스타일이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후반 각각 35분씩, 70분을 풀타임으로 뛸수 있는 체력을 임흥신감독은 요구한다. “한 선수가 한 경기를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체력이 된다면 결국 한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체력이 된다고 봐야 한다, 대한민국 여자하키 국가대표선수라면 이 정도의 체력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며 체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거기에 팀워크가 합쳐지면 정신력까지도 갖춰지게 되고, 결국 그것이 한국여자하키의 트레이드마크인 빠른 역습에 의한 공격을 가능케 한다는 게 임감독의 소신이다.

하키 여자대표팀

이제 앞으로의 과제는 조직력을 얼마나 단단하게 갖추느냐다. 여자하키대표팀은 각각 8.9 가지가 되는 공격과 수비전술 중 현 대표팀의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그리고 맞대결 상대 공략에 적합한 2, 3개를 골라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승부를 볼 계획이다. 결국 어느 한사람, 어느 한 스타플레이어가 주도하는 경기가 아닌 전체가 경기를 리드하고 여러 포지션을 소화해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임감독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선수들을 모았다. 남자보다 더 열악한 저변을 탓할 틈도 없이 33세의 맏언니 이선옥을 필두로 박선미, 문영희 등 30대 고참들을 불러들였고, 20대 후반의 박미현과 주니어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체력이 좋고 감각이 뛰어난 늦깍이 김종희, 그리고 막내 천은비까지 자신의 훈련스타일과 전술스타일을 소화 해 내줄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렸다. 임감독의 치밀한 계획과 혹독한 훈련은 올림픽을 앞두고 좋은 성과를 내보였다.

지난 1월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서 열린 4개국 국제여자하키대회(한국, 영국,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참가) 결승전에서 세계 4위 영국에 3대2로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고, 5골을 기록한 박미현이 득점상과 베스트 플레이어상을 받았다. 지난 5월 초에 있었던 프레올림픽에서는 영국에게 패하고, 아르헨티나에게는 무승부, 중국에게는 이기면서 1승1무1패로 4개국 중 3위를 차지했지만 오히려 자신감을 안고 돌아왔다. 특히 영국과의 경기는 0 대 1로 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시 한번 붙으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선수들과 임감독은 만족스러워했다. 자신 있다는 다음경기는 올림픽 조별리그 상대로 영국의 홈인 런던에서 맞붙게 돼 있으니 이 자신감이 일방적인 응원을 포함한 홈텃세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길 기대해본다.

대표팀의 연습하는 모습

맏형, 맏언니의 희생과 투혼

이번 올림픽에 나가는 남녀하키대표선수들은 ‘하키에 대한 약간의 관심만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하는 작은 소망을 안고 기꺼이 대표팀에 합류했다. 남자 최고령 하키대표선수 여운곤과 여자팀 맏언니 아기엄마 이선옥도 역시 마찬가지 마음이다. 김윤동 남자팀 감독은 이미 지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은퇴를 선언한 여운곤에게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혔다. 여운곤은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게 맞다고 생각해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남자하키가 올림픽에 못나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경험있는 선수들이 모두 뭉친다는데 가만있을 수 없어 감독님의 권유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막내와 15살 차이, 체력적으로 힘들 수 도 있지만 그에게 김윤동 감독이 바라는 것은 경기력만은 아니다. 정신적인 지주가 돼 줄 수 있는 선수, 경기 전체를 조율할 수 있는 듬직한 맏형이 필요했던 것이다. 2002 월드컵에서의 주장 리베로 홍명보처럼 말이다. 여운곤에게도 욕심이 생겼다. 벌써 네 번째 올림픽 출전, 첫 번째 출전이던 시드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후 연이어 한 골차로 아쉽게 4강 진출해 실패한 아쉬움을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있던 터라 런던올림픽에 대한 기대와 사명감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여운곤 선수 이선옥 선수

여자대표팀 맏언니는 아기엄마 하키선수로 더 잘 알려진 이선옥이다. 아기엄마인 자신을 불러준 감독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백일 된 아이를 뒤로 하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맏언니로서 모범이 돼야 한다는 것이 힘들고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이선옥 역시도 메달에 대한 미련이 자신을 움직였다. 과거 두 번 나간 올림픽에서 9위에 이어 7위를 하고 고개를 숙이며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미련을 날려줄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다. “예전 두 번의 올림픽을 봐도 분위기나 팀워크가 지금처럼 좋았던 적이 없다. 선수들의 하려고 하는 의지, 유럽선수들과 경쟁했을 때 스피드면에서 공격진도 월등하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큰 일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표팀에 합류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 양육을 맡긴 딸아이가 벌써 네 살이 됐다며 웃는 이선옥,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을 올림픽에 쏟아 붓고 있어 미안하지만 즐겁다는 여운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하키를 하는 딸에게 좀더 좋은 하키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임흥신감독, 비인기종목이라고 애처롭게 보지 말고 즐겁게 경기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봐달라는 김윤동감독, 그리고 런던에서의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을 꿈꾸는 대한민국 하키선수들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Super Rookie

천은비 선수 여자하키의 차세대 기둥천은비

여자하키 국가대표팀의 맏언니는 33살의 이선옥, 막내는 21살의 천은비다. 장기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한국 여자하키대표팀에서, 천은비는 세대교체의 중심에 서 있는 동시에, 런던올림픽 메달 사냥에 교두보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아시아 여자 챔피언스트로피대회에서 한국이 중국을 5-2로 꺾으며 2연패를 달성할 때, 2골의 선제골을 내주고 중국에게 끌려가던 시점에 당당히 동점골을 만들어 내며 승리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 주인공이 바로 천은비였다. 막내지만 고참들에게 버금가는 배짱과 기량을 지니고 있는 것이며 공격이든 수비든, 레프트든 라이트든. 어느 포지션, 어느 위치에 있더라도 잘 해내는 그녀는, 떠오르는 한국여자하키대표팀의 미드필더다.

하키를 사랑한 방황 청소년, 국가대표가 되다.

천은비의 중, 고등학교 선수 시절은 한마디로, ‘전관왕’이었다. 하키로 알아주는 수원의 매원중과 태장고를 거치는 동안 수도 없이 우승을 경험했고, 센터 포워드로 훨훨 날면서 득점상과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쥐었다. 한 경기당 평균 1~2골은 기록했고, 경기력 차이가 나는 팀과 붙으면 5골 이상도 문제없었다. 2009년 고3시절엔, 전국춘계남녀하키대회에서만 13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으며, 같은 해 주니어대표팀으로 출전한 18세 이하 여자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중국과의 마지막 결승 연장전에서 역전골의 터뜨리며 팀에게 우승을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했던 선수생활과는 달리 그는 방황하는 청소년이었다. 그냥 뛰는 게 좋아서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부상도 많고 훈련도 힘들다보니 하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운동을 하지않겠다고 도망도 다니고 학교를 안가기도 일쑤, 하키부 동기들과 가출해 붕어빵 장사를 하기도 했다. 당시 태장고 고창석 하키부감독은 도망간 천은비를 잡으러 다니기 바쁠 정도였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다.

그런데, 늦은 사춘기에 삶의 갈피를 못 잡던 때에도 천은비는 신기할 정도로 하키경기에서는 빠져 본 적이 없다. 방황이 극에 달했던 고 3시절, 출전했던 경기에서도 단 한번 져보지 않았던 천은비는 “운동 안하고 놀다 보니까, 돌아오면 하키가 정말 재밌었다. 하기 싫어 도망쳤지만 막상 안 하면 무언가 허전하더라. 경기에 나서면 다시 스틱을 만지는 게 그냥 좋았고, 재밌게 하다 보니 성적도 좋았던 것 같다.”라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천은비 선수
나의 임무는 멀티플레이

지금 국가대표 2년차 막내의 어깨엔 무거운 짐이 지어져 있다. 태장고를 졸업하고 실업팀 KT에서 뛰고 있는 그는 그동안 포워드였지만, 대표팀에선 미드필더로 포지션이 바뀌었다. 그 이유에 대해 임흥식 대표팀 감독은 “천은비가 어리지만 시야가 상당히 넓다. 미드필더는 공격 시 공격수에게 적절히 공을 투입시켜줘야 하는 패싱이 좋아야 하는데, 천은비는 그 점이 뛰어나다. 또한 돌파와 슛팅력도 좋기 때문에 공격수가 지치면 언제든지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 선수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천은비의 리버스(스틱을 거꾸로 돌려 사용하는 스트로크- 스틱의 좌측에 평면이 있기 때문에 우측으로 패스되어 온 공은 스틱을 뒤집어서 플레이해야 한다.)는 대표팀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리버스가 뛰어나면 패스의 폭이 넓어져 기동력이 좋아지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미드필더로서는 굉장한 플러스 요인이다.

하지만 강호 유럽선수들에 비해 작고 호리한 천은비가 체력소모가 가장 많은 미드필더 포지션을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선 2배로 뛰어야하고, 어깨싸움에 밀려선 안 되다보니 팔의 힘도 세야한다. 때문에 지금 천은비는 팔 근육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다. 체력훈련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더 무겁게, 조금 더 반복하며 고통을 꾹 참아 내고 있다.

비인기종목의 설움, 금메달로 날릴테다.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 한다. 여자하키는 비인기종목이라 2등을 해도 금방 잊혀진다. 축구나 농구, 야구는 1등 못해도 다 알아주지만 우리는 1등이 아니면 기억해주지 않는다.”며 비인기종목의 서러움을 토로한 천은비는 런던 올림픽의 금메달로 여자하키를 반드시 알리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오늘도 천은비는 자신의 발에 주문을 건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 네가 최고라고.
그의 주문이 걸린 발이, 런던올림픽에서 ‘금빛마술’을 펼쳐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Posted by Mr크리스티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