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런던에서 전해질 감동의 드라마를 기다리며

지난 4월12일 태릉선수촌 태권도 훈련장은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국의 올림픽 출전선수 중 차동민(+80KG급)과 황경선(-67KG급) 두 명이 일찌감치 확정된 가운데 나머지 두 체급의 올림픽 출전선수를 가리는 마지막 평가전이 치러졌기 때문이다. 경기결과, 이대훈과 이인종이 각각 남자 -58kg급과 여자 +68kg급에서 우승을 차지해 런던행 티켓을 따냈다. 이대훈은 용인대 선배 이길수를 이겼고, 이인종 역시 팀 후배들인 안새봄과 박혜미를 이기고서 올림픽 출전의 영광을 안을 수가 있었다. 남자는 용인대 소속 3명이, 여자는 삼성에스원 소속 3명이 올림픽 최종선발전에서 출전권 한 장을 놓고 피말리는 싸움을 해야했다. 서로 잘 알고 있는 상대, 한솥밥을 먹는 선후배를 이겨야 하는 안타까움과 치열함, 이것이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한국태권도 국가대표선발전의 현실이다. 이렇게 길고 험난했던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단 네 명의 선수만이 런던행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체급결정부터 시작되는 경쟁

태권도는 남녀 각각 두 체급씩, 네 명만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올림픽에서 태권도는 남자 -58kg, -68kg, -80kg, +80kg급, 여자 -49kg, -57kg, -67kg, +67kg급 즉 남녀 각각 네 체급씩으로 나뉘어진다. 어떤 체급을 내보느냐에 따라 메달색깔이 바뀔 수도 있는 만큼 올림픽 출전국들로서는 가장 경쟁력이 있는 남녀 각 두 체급을 고르는 일이 첫 번째 과제다. 한국태권도는 이번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심사숙고 끝에 남자 -58kg급과 +80kg급, 여자 -67kg급과 +67kg급을 출전체급으로 결정했다. 남자는 3회 연속 올림픽에 내보냈던 -68kg급 대신 -58kg급을 선택했다. -68kg급의 최강자, 터키의 타제굴과 이란의 바게리가 최근 수 년 동안 세계대회를 번갈아가며 석권하고 있어 한국으로서는 승산이 없다는 계산이 나왔다. 대신 국내 선수층이 두텁고 좋은 선수들이 많이 분포돼 있는 -58kg급을 선택했다. 지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그 이듬해 용인대에 입학해 바로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이대훈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둔 결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태권도 대표팀

그리고 최중량급 +80kg급은 남자 태권도의 꽃, 왕체급이라고도 불리는 만큼 태권도 종주국으로서는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김경훈, 문대성, 차동민까지 3회 연속 한국이 금메달을 가져오며 종주국의 자존심을 살린 만큼 이번 런던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게다가 최중량급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던 말리의 게이타나 프랑스의 파스칼이 각각 대륙예선에서 무너지면서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해 나름대로의 행운도 따르고 있다.

한편 여자는 -67kg급은 고수하되 그동안 한국의 올림픽체급으로까지 불렸던 -57kg급 대신 최중량급인 +67kg급 출전으로 변화를 줬다. -57kg급은 그동안 시드니(정재은), 아테네(장지원), 베이징(임수정)으로 이어지는 금밭이었지만 이인종, 안새봄, 박혜미 등 좋은 선수가 많아 경쟁력있는 최중량급을 낙점했다. 그 이후 길고 긴 선발전의 여정을 통해 남자 이대훈(-58kg급), 차동민(+80kg), 여자 황경선 (-67kg), 이인종(+67kg)이 네 체급의 주인공이 됐다.

  • 이유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 사진도현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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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선 선수 한국태권도 사상 최초 3회연속 올림픽 출전황경선

이 네 선수 중 가장 올림픽 경험이 많은 선수는 단연 황경선이다. 많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한국태권도 사상 최고 3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있다. 서울체고 재학 시절이던 2004년엔 한국 태권도 최초의 고교생 올림픽 대표로 아테네 대회에 나섰고 4년 후 베이징에서는 한체대생의 신분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또 4년이 지난 2012년에는 어느덧 20대 중후반의 실업선수로 올림픽 매트 위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올림픽에서 동메달에 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어린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 세계적으로 정평이 날만큼 나 있는 선수가 바로 황경선이다.

김세혁감독은 “황경선이 출전한다고 하면 상대선수들은 겁부터 먹는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한 경기운영 능력을 지니고 있어 가장 금메달에 가까운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정작 황경선 본인은 다른 선수에 비해 운이 좋았을 뿐인 것 같다며 올림픽 3회 연속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단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아테네 때는 첫 올림픽이라 어리둥절했고, 두 번째 베이징에서는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아 마음만 간절했다면, 이번 런던에서는 몸 상태도 좋고 마음의 여유도 생겨서 좀더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황경선은 전자호구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버렸다. 올림픽에서 사용될 대도(Daedo)의 전자호구가 기존 국제대회에서 사용된 라저스트(LaJUST)에 비해 강도측정이 더 강화된 만큼 때려치는 공격전술을 펴는 황경선에게는 유리해졌다고 볼수 있다. “그동안의 호구는 차고 밀어야만 점수가 됐기 때문에 고전을 했고, 그래서 얼굴발 기술(얼굴을 차서 3득점을 하는 기술)을 많이 연습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구가 바뀌면서 세게 차도 점수가 되고 또 얼굴발 기술까지 접목한다면 좀더 공격적인 경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차동민 선수 다시 한번 왕체급의 왕이 되고픈차동민

차동민 역시도 올림픽 무대는 물론 금메달까지 목에 걸어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이 불안한 체급 중 하나로 꼽히는 체급이 바로 차동민의 최중량급(+80kg)이다. 차동민의 실력이야 지난 베이징올림픽을 비롯한 여러 국제대회를 통해 인정받은지 오래지만 2m가 넘는 선수들이 즐비한 최중량급에서는 189cm, 87kg의 차동민은 체격조건에서 밀려도 한참 밀리는 수준이다. 경기장에 마주보고 서 있으면 마치 산이 앞에 놓여있는 것 같을 때도 있다고 말할 정도다. “물론 중압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얼굴을 보고 경기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배쪽을 뛰고 보며 내 작전을 구사하는데 집중하기 때문에 올려다보며 경기를 할 필요도 없고,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차동민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체격으로 상대할 생각은 없다. 자신의 기술과 전술을 통해서 승부를 볼 생각이다.

연습중인 차동민 선수 연습중인 차동민 선수2

이에 대해 김세혁 감독은 “신장이 크면 당연히 스피드가 떨어지는 법. 반대로 차동민은 중량급이면서 몸이 날렵해 큰 선수를 상대로 얼굴까지 연결해가는 공격이 아주 좋다. 즉 공격을 몰아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충분히 해볼만하다”고 평가했다. 신장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훈련량도 크게 늘리고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다시 한번 올림픽 정상에 서는 꿈을 꾸고 있다.

이대훈 선수 그랜드슬램을 꿈꾸는이대훈

1992년생, 이제 갓 스물이 넘은 대학생이 올림픽 무대를 두드린다. 기술과 체력, 그리고 경험이 중요한 한국 남자태권도에 혜성같이 나타나 고등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가 됐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태권도계의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이어 3회 연속 내보냈던 -68kg급 대신 -58kg급을 출전체급으로 선택한 대한태권도협회의 결정으로 올림픽 출전기회까지 잡았다. 만약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오른다면 이대훈은 20대초반 나이에, 올림픽출전조차 어렵다는 태권도에서 그랜드슬래머가 된다. 이대훈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80cm 신장의 장점 때문이다. 태권도는 세계선수권대회나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8체급씩, 총 16체급으로 경기를 치르는데, 이 기준으로 보면 이대훈은 -63kg급 선수다. 이 체급에서도 신장의 우세를 보여왔기에 -58kg 체급으로 나가는 올림픽에서는 더욱 큰 키가 장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합중인 이대훈 선수

얼굴공격 능력이 뛰어나 몸통을 맞고 내준 1점을 내주고도 바로 3점을 따와 전세를 뒤집는 능력이 탁월하다. 김세혁감독은 “이대훈이 어린 나이지만 기술뿐만 아니라 근성도 좋은 선수다. 단 자신의 체급보다 조금 낮은 체급으로 뛰기 때문에 체중조절과 그에 따른 체력관리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이대훈 역시 올림픽까지 가장 큰 과제를 체중조절로 꼽았는데 “보통 때도 체급별 종목이라 체중감량을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3, 4kg 정도를 더 감량하는 입장이다. 보통은 단시간 내에 감량을 하는 편인데, 올림픽을 앞두고는 평소보다 운동량을 높여서 감량을 하면서 체력이 유지되게 할 생각이다”라고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또 태권도 올림픽 경기장은 딱 하나의 매트에서 한 경기씩만 경기가 진행된다. 모든 시선이 쏟아지는 그 부담감을 이대훈이 어떻게 이겨낼지도 메달색깔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전망이다.

언제나 금메달은 ‘떼 논 당상’이라 여겨졌던 태권도가 런던에서는 3회연속 출전의 베테랑 황경선, 장신의 숲에서 한국태권도의 자부심을 지켜온 차동민, 떠오르는 별 이대훈, 3전4기의 이인종, 이 4인방에게 운명을 걸었다. 그리고 태권도에서 받은 영광을 돌려줄 마지막 봉사라며 이 4인방을 이끌고 런던행 비행기에 오를 김세혁 감독까지, 저마다의 소망과 사연들을 가슴에 품은 이들이 런던에서 보내올 감동의 드라마가 기다려진다.

전자호구 적응여부가 변수

태권도는 판정시비의 문제를 없애기 위해 전자호구를 도입했다. 어떤 전자호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공격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므로 올림픽 공식 전자호구 결정에 귀추가 주목됐다. 결국 지난해 세계태권도연맹은 스페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도’에서 개발한 전자호구를 올림픽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세계태권도연맹이 주관한 대회에서는 라저스트 호구가 통영돼 왔고 두 호구가 포인트를 주는 방식에 약간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는 ‘대도호구 적응’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라저스트 호구는 맞는 순간 센서가 작동을 해도 밀어주는 압력이 없으면 포인트로 인정이 되지 않은 반면, 런던올림픽에 쓰이게 된 대도호구는 강도치를 올려 강하고 세게 때리는 선수에게 유리하다.

예를 들어 신장이 좋아 긴 발을 이용한 공격에 능한 이대훈의 경우, 그동안 차고 다시 미는 기술이 좋아 라저스트 호구가 만들어낸 스타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대도호구를 바꾼 후 밀어차기와 직선공격 동작이 포인트로 연결되지 않아 선발전에서도 예상외로 부진했다. 반면 황경선과 차동민 등은 오히려 대도호구의 사용을 반기는 쪽이다. 밀어차기에 약했던 황경선은 강도 높은 전자호구로 바뀌면서 자기 스타일에 맞는 경기운영을 할 수 있게 됐고, 차동민은 수비시 커버만 잘하면 득점을 쉽게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경기 풀어가기에 더 좋다는 입장이다. 대도 전자호구 사용이 발표된 직후부터 대표팀 훈련방식도 변화된 호구에 맞춰 훈련하고 있지만, 결국은 출전 네명이 얼마나 빨리 전자호구에 적응을 마쳐 이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있을지가 또 하나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Super Rookie

이인종 선수 31살의 올림픽 신인이인종

이제는 포기하라고 했다. 이 정도면 됐다고도 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해냈다. 런던 올림픽 여자 +67kg급의 출전권을 어렵사리 거머쥔 이인종의 얘기다. 이인종의 나이, 서른하나, 올림픽 도전 네 번 만에 결국 숙원을 이뤘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출전이기에, 런던올림픽에서 이인종은 한국태권도 대표팀의 숨겨진 히든카드로 꼽히고 있다.

태권도를 시작한 지 20년 만에 독기를 품다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것 보다 힘들다는 치열한 국내 대표선발전에서 이인종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그를 20년간 지켜본 대표팀의 김세혁감독은 이인종이 마지막 3차 평가전에서 안새봄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인종이의 얼굴에서 성난 사자의 얼굴을 보았다. 드디어 끝까지 갈 줄 아는 선수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인종은 근성 있고, 끈기 있는 선수지만 그동안 막판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 왔다. 2007년과 2009년에 있었던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도 리드를 하다가 역전패를 당해 결국 은메달에 머물렀던 터라 이인종은 뒷심이 부족하고 근성이 부족한 선수로 평가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선발전이 있기 전 태권도 관계자들은 올림픽예선전에서 출전권을 따 온 안새봄이나 지난해 12월 런던올림픽 태권도 시험경기에서 동메달을 땄던 박혜미의 우세를 점쳤고 언론들도 이인종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인종은 세계대회 우승경험이 없는데다 언제나 후배들 뒤에 밀려나 2인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태권도를 잘 하지만 국제경쟁력은 없는 그런 선수였다. 그러나 런던올림픽 평가전만은 눈빛부터 달랐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근성있는 모습에 평가전 후 김세혁감독은 올림픽에서 이인종이 기대이상의 선전을 해줄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시합중인 이인종 선수
포기할 수 없는 올림픽

태권도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 고3이었던 이인종은 기대주로 각광받으며 태릉선수촌에 입촌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당시엔 막내니깐, 다음에는 자신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해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2번째, 3번째까지 실패할 줄은 몰랐다. 27살, 야심차게 덤볐던 2008 베이징올림픽의 출전까지 좌절되고 나니 올림픽을 꿈으로만 간직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꿈꿔오던 올림픽의 꿈을 그대로 버릴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도복의 허리띠를 졸라매며 2012 런던 태권도 대표 선발전에 초점을 맞추던 지난해 3월, 2011 경주세계선수권 출전 최종평가전에서 서울시청의 오혜리를 만나 태권도 인생 처음으로 10:0의 완패를 당했다. 그동안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부모님마저 이제는 끝인 것 같다며 올림픽출전을 포기했다. 모두가 그의 올림픽도전이 무리라고 말렸지만 이인종은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섰고, 지난 4월 국내선발전 마지막 평가전에서 그동안 세월이 그냥 흐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얼굴 공격과 뒤돌려차기 등 노련한 발차기로 쟁쟁한 라이벌들을 모두 격파했다.

이인종이 연이은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태권도를 즐겼기 때문이다. 태권도를 시작한 지 20년, 올림픽 도전만 해도 네 번, 포기했을만도 하지만 체력운동이 너무 고통스러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을지언정 태권도가 지겨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기기 위한 태권도를 하기보단 즐기는 태권도를 했기 때문에 세계대회에서 아깝게 우승을 놓쳤을 때도 자신만은 만족했다. 이인종은 “정말 이상했다. 세계에서 2등이면, 그게 어디냐. 난 정말 감사한데, 사람들이 자꾸 ‘넌 2등 선수’, ‘넌, 안 돼.’ 라고 하니까,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라며 서러웠던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1등만 기억하는 주변 환경에 지친 이인종은 올해 초, 올림픽 출전여부와 관계없이 2012년까지만 선수활동을 하겠다며 은퇴의사를 밝히고 자신의 태권도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런던 올림픽 대표선발전에 나섰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위해서 이번만큼은 ‘즐기자’가 아닌 ‘이기자’라는 생각으로 준비했고 그녀의 독기는 결국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이나 힘들다던 올림픽 출전 기회를 안겨줬다.

은메달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이인종 선수

이인종의 장점은 주특기가 없다는 점이다. 한 가지 특별나게 잘 차는 주특기 발은 없지만, 못 차는 발차기도 없다. 노련함이 있는 만큼,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갖고 있는 기술을 잘 구사한다면 런던 올림픽에서 승산이 있다. 김세혁 감독은 “여자 +67kg급에선 프랑스의 에팡이 유력한 우승 후보인데, 안새봄, 오혜리, 박혜미까지 한국선수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인종은 다를 지로 모른다, 이인종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까 노장이 투혼을 발휘만 해 준다면 에팡을 이기고 금메달을 딸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한국 킬러’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에팡은 이인종과 전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련한 이인종이 몸통(1점)을 내주고, 얼굴(3점)을 노린다면 충분히 금메달도 승산이 있다. 하지만 이미 이인종의 마음에는, 금메달 이외의 결과는 없다.

태권도 선발전에서 아끼던 후배 안새봄을 이겼을 때, 안새봄은 이인종에게 런던 올림픽 금메달 이미지 사진을 전송했다. 안새봄에게도 런던 올림픽은 꿈의 무대였을 터, 예선전에서 출전 티켔을 따 온 것도 자신이었고, 언론의 뜨거운 관심은 자신이 모두 받았지만 평소 멘토로 따르던 이인종이었기에, 뜨거운 패배의 눈물을 뒤로하고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3번의 쓰디 쓴 출전 좌절을 경험했던 이인종은 “내가 금메달을 따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긴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나 혼자 태권도를 너무 좋아해서 경기를 했고 만족했지만 이번엔 나를 끝까지 믿어준 사람들을 가슴에 새기고 런덩으로 갈것이며 꼭 승리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동료들의 금메달에 대한 염원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올림픽을 준비하는 맏언니 이인종. 그의 금빛 발차기가 기대된다.

  • 정선미 스포츠 리포터
  • 사진도현석 작가

Tip

1. 숫자가 나타내는 의미를 알고 보라

청홍으로 나뉘어져 크게 보이는 숫자가 스코어다. 위 사진에서 R1으로 보이는 것은3라운드 중 1라운드가 끝났다는 의미이며, 위 중간에 보이는 0:00 숫자는 경기가 시작되면 진행시간을 나타내게 된다. 윗 사진을 통해서 경기상황을 유추해본다면 현재 1라운드가 끝이 났고, 청팀 선수가 2 대 0으로 앞서고 있으며 휴식시간이 31초를 경과했다는 뜻이다.

태권도종목의 스코어 화면

2. 포인트 여부도 알수 있다?

물론이다. 전자호구의 강도가 전광판에 제시되기 때문에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선수가 구사한 기술이 포인트가 되는지 아닌지를 알수 있다. 윗 사진에서 보이는 숫자 중 왼쪽 위 가장자리 녹색빛의 33이라는 숫자가 바로 전자호구를 통해 측정되는 기준 강도가 된다. 이 숫자는 체급에 따라 가벼운 체급이면 낮아지고 무거운 체급일 수도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그 숫자 아래로 쭉 내려와 보이는 ‘41’이라는 숫자는 선수의 발차기의 강도다. 즉 33이 기준인 체급의 청팀 선수가 41의 강도로 발차기를 성공해서 점수를 획득했다는 것을 이 숫자들을 통해 알 수 있다.

3. 선수들이 전광판을 자주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인가?

정확히 맞다. 자신의 기술이 전자호구를 통해서 포인트로 측정될 정도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기술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으니까. 혹자는 태권도 선수가 이기고 있을때 전광판을 자주 보는 이유는 도망다니기 위해 시간을 체크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선수들이 전광판을 자주 보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기술이 점수가 됐는지 알아보고 경기운영 전략을 세우려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도 이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오히려 선수 자신들도 경기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싫다고 말할 정도다. 이제부터 태권도 경기를 볼때 전광판을 자주 보는 선수를 보며 무조건 비난하는 편견을 버려보면 어떨런지.

 

Posted by Mr크리스티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