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들의 이유있는 도전

2012년 런던 올림픽은 한국스포츠에 각별한 의미가 있는 대회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참가한 올림픽이 1948년 런던올림픽이었고 이 대회에서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이 역도 종목에서 사상 첫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획득했다. 64년 전 대한민국이 첫 메달을 품었던 곳, 한국역도의 역사가 살아있는 그곳, 런던에서 한국역도의 새로운 역사가 준비되고 있다. 올림픽 3회 연속 출전, 2연패 및 3회 연속 메달획득을 노리는 장미란, 베이징에서는 깜짝 금메달, 런던에서는 확실한 세계1인자, 그리고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사재혁이 한국역도의 자부심을 안고 런던 땅을 밟는다.

올림픽 역도는 한 나라에서 남자부 8체급 가운데 6체급, 여자부 7체급 가운데 4체급까지만 출전할 수 있다. 한국역도는 지난해 이미 국가별 쿼터에서 최대 출전권을 확보해 런던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최대인원인 10명을 출전시킨다. 이 10명 안에는 4년 전 세계를 들어올린 한국의 역사(力士)들이 포함돼 있다. 장미란과 사재혁, 이들에게 메달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4년 전과는 다소 다른 현실과 여건이 그들에게 놓여 있어선지, 아니면 금메달을 목에 걸어봤던 경험 때문인지 두 선수는 부담감보다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초조하기보다는 즐거운 모습으로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 이유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 사진조관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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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전설이 되고 있는장미란

장미란을 빼고 한국역도를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장미란의 이력은 화려하다. 한국신기록을 연이어 경신했던 어린 시절로까지 돌아가지 않더라도 지난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21살의 나이로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아 은메달을 땄고, 2008베이징올림픽에선 75kg이상 체급에서 인상 140kg, 용상 186kg, 합계 386kg을 들어 올리며 세계신기록 수립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어느덧 올림픽만 세 번째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 사이 각종 세계선수권대회 4회(2005~07, 2009) 연속 우승,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2 아시아선수권 우승까지 각종 국제대회를 석권하며 남자의 전병관에 이어 역대 2번째이자 여자 역도 사상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한국여자 역도의 역사는 장미란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세계여자역도의 한 켠도 장미란을 위해 비워놓은 듯 그녀는 여자역도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최중량급에서 장미란이 10년 가까이 세계 정상을 지키는 동안 탕궁홍, 무솽솽, 주룰루 등 중국의 라이벌들만 수 차례 바뀌었고 20대 초반에 나갔던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떠오르는 스타로,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확실한 우승후보로, 그리고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는 세계역도의 전설로, 다시 한번 플랫폼에 선다.

10여 년을 정상에 있었던 관록이 말해주듯 장미란의 일상은 여유가 넘친다.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올림픽, 그래서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올림픽을 앞두고서도 말이다. 두 번의 출전이 주는 경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올림픽 2연패, 금메달과 같은 부담 대신 이제는 도전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됐기 때문일 듯 하다. 장미란은 “올림픽 무대에서 훌륭한 선수들과 같이 겨룰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다. 러시아, 중국 등 훌륭한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었던 것이 내가 꾸준히 잘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며 “어쩌면 챔피언도 도전자이기 때문에 금메달리스트라는 나의 위치를 다 내려놓고 도전자 입장에서 경기를 즐기고 싶다”는 말로 올림픽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세월의 흐름이 장미란에게 여유와 경험만을 준 것은 아니다. 장미란도 어느덧 29살의 나이가 됐고 고질적인 부상이라는 것을 얻었다. 장미란은 늘 괴롭혔던 왼쪽 어깨 부상이 어느덧 절친처럼 함께 하고 있다. 물론 두 번의 올림픽과 크고 작은 국제대회를 치러봤고, 몸이 좋을 때도 또 나쁠 때도 경기를 해봤던 장미란이기 때문에 지금의 몸 상태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장미란을 지도하는 김순희 코치도 “2008년에는 근력, 파워와 같은 신체적인 힘이 장미란의 무기였다면 지금은 노련미와 경험, 정신력이 큰 힘이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도록 마음 편하게 준비하게끔 지도자로서 도와주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장미란과 김순희 코치의 말을 정리해보자면 더 무거운 바벨을 드는 종목인 역도에서 근력과 파워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것 일수 있지만 기록경쟁보다는 메달경쟁이 더 중요한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는 경기운영능력과 정신력이 뛰어난 장미란에게도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최근의 기록으로 볼 때 젊은 선수들의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중국의 주룰루(24)나 러시아의 타타아나 카시리나(21) 등 어린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연이어 내고 있다. 카시리나는 지난해 4월 유럽선수권에서 327kg을 들어 합계 신기록을 세웠고, 12월에는 자국에서 열린 유럽선수권에서 인상 기록(148kg)까지 갈아치웠다. 또 주룰루는 지난해 11월 세계선수권에서 328kg을 들어 올려 합계 기록을 다시 썼다. 모두 장미란이 갖고 있던 기록들이다. 결국 런던 올림픽 여자역도 최중량급은 장미란과 카시리나, 주룰루의 3파전으로 압축되는데, 최고기록을 따지면 주룰루(328㎏) 카시리나(327㎏) 장미란(326㎏) 순이지만 각각 1kg의 차이다. 한번의 실수가 메달 색깔을 바꿀 수 있는 상황, 즉 힘과 패기로 세계제패를 노리는 주룰루와 카시리나의 도전을, 관록의 장미란이 어떻게 이겨낼 지가 관건이다.

부상 극복이 관건사재혁

4년 전 역도경기가 펼쳐진 중국 베이징 항공한천대학체육관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역도 남자 77kg급에서 한국의 사재혁이 합계 366kg(인상 163kg·용상 203kg)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전병관이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무려 16년 만에 나온 한국역도의 금메달이었고, 기대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 사재혁의 기록은 랭킹 2위정도의 기록이었으며 그 전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재혁보다 8kg을 더 든 세계랭킹 1위 중국의 리훙리가 이 체급의 강력한 우승후보 꼽히고 있었다. 자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에서 세계랭킹 1위의 선수가 당연히 금메달을 목에 걸 것으로 예상했던 중국으로서는 충격적인 패배였으며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나 사재혁은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한다. 상황은 같다. 아니 어쩌면 더 힘들어 졌을지도 모르겠다. 사재혁은 2010년 6월 어깨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라 재활에 매달리면서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그 해 세계선수권대회에는 불참했다. 세 번째 어깨 수술이었던 탓에 더 이상 올림픽은 힘들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1년여 힘겨운 재활 끝에 다시 바벨을 들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도 허리통증 때문에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다. 어깨부상의 트라우마와 허리통증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런던올림픽을 앞둔 사재혁의 가장 큰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정작 사재혁은 “부상을 당했음에도 부상을 이겨내고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래선지 올림픽에 대한 부담감도 그리 크지 않다. 최선을 다하고 있고, 좋은 메달색깔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로 자신의 마음가짐을 내비쳤다.

장미란과 마찬가지로 사재혁 역시 몸 상태로나 기록상으로나 금메달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은 4년의 패배를 되갚겠다는 생각으로 남자 77kg급에 두 명의 선수를 내보낼 가능성도 크다. 남자부 8체급 가운데 6체급을 나설 수 있고, 한 체급 당 최대 2명까지 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은 77kg 세계기록 보유자 류샤오쥔(중국, 378kg)과 또 다른 신예가 ‘사재혁 타파’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사재혁의 최고기록은 375kg으로 기록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 프랑스에서 열린 2011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도 인상 157㎏(5위) 용상 203㎏(3위), 합계 360㎏을 기록해 중국의 류샤오쥔(375㎏), 수다진(372㎏)에 이어 동메달에 머물렀다. 결국 올림픽 디펜딩 사재혁은 중국의 벽을 넘어야 2연패를 이루는 어찌 보면 도전자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체적인 것을 종합해봤을 때 사재혁이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서는 부상에서 최대한 벗어나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를 나서면서도 영리한 경기운영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를 돌아보면, 사재혁은 인상 1위 뤼샤오쥔(170㎏)과 13㎏나 벌어져 상대적으로 자신이 강한 용상에서도 승부수를 던지지 못했다. 만약 인상에서 조금만 격차를 좁혀놨더라도 뒤집기를 시도해 볼만 했다. 런던올림픽에서도 결국 상대적으로 취약한 인상에서 최대한 1위와의 격차를 줄여놓고 용상에서 역전승을 노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역도 국가대표팀의 이형근 감독은 “ 3, 4명이 375kg 이상에서 금메달을 놓고 다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재혁이 인상에서 좋은 페이스를 보이고 있어 인상에서 중국과의 격차만 줄여주면 용상에 뒤집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축제 중 하나인 올림픽, 그 중에서도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서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의 국가(國歌)가 울려 퍼지고, 국기를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은 어떤 선수라고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상했던 그 순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선수들은 한 순간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정상을 지키는 것이 어렵고, 올라가는 것보다 잘 내려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아는 챔피언들에게는 더욱 긴장되고 초조한 시간이 지금이다. 그런 그들이 ‘여유’와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장미란의 말처럼 우리도 메달색깔에 연연하지 말자, 힘찬 응원을 보내되 마음을 졸이지 말고 즐겨보자. 장미란과 사재혁, 이 두 선수가 올림픽 2연패를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이들이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지 않은가. 두 선수가 그렇듯이 우리도 런던올림픽 역도경기장의 플랫폼에서 이들이 만들어낼 아름다운 도전을 맘껏 즐겨보면 어떨까.

  • 이유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 사진조관희 작가

Super Rookie

포스트 장미란은 내자리문유라

한국여자역도는 오랜 기간 ‘제2의 장미란’을 찾고 있다. 장미란이 드높인 한국여자역도의 위상을 이어줄 차세대 희망이 필요한 것이다. 세계여자역도에 한 획을 그은 대단한 장미란 이기에 그 뒤를 이을 재목을 찾기란 쉽지가 않지만, 한국여자역도가 내심 ‘포스트 장미란’으로 점 찍어 놓은 선수는 있다. -69kg급의 문유라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역도 바벨을 손에 들던 어린 중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써내려 간 신기록은 수도 없고, 그 기록들 중에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한국기록도 3체급(58kg, 63kg, 69kg급)에 걸쳐 무려 9개나 된다. 그런 그가 이번 런던올림픽에 첫 올림픽 출전 신고식을 치를 예정이다.

타고난 장사

문유라는 타고난 역도인이다. 쌀가게를 하던 그의 아버지가 번쩍 번쩍 쌀 한 가마니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20kg 쌀자루를 따라 들어 올린 것이 겨우 7살 때다. 어릴 때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했고 힘도 셌던 터라 우연히 중1때 학교에서 열린 ‘역기들기 대회’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 대회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두 배가 넘는 무게를 들어 올리며 고학년들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했다. 그 일이 계기가 돼 부천여중 역도부에 발을 들이게 됐다. 그 때부터 문유라는 나가는 대회마다 마치 예약을 해놓은 듯이 메달을 목에 걸었다. 역도 선수라는 이름이 붙여 진지 얼만 안 돼 나간 전국중등부역도경기대회에서(53kg급) 바로 2위를 기록하더니, 이듬 해 소년체전에선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며 한국 역도계에 이름을 알렸고, 한 달 뒤 전국여자역도선수권대회에선 인상65kg, 용상80kg, 합계145kg을 들어 올려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그리고 중3땐 한 체급을 올린 58kg급으로 자신이 봄에 세운 ‘중학생신기록을 겨울에 경신하며 무려 5번의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후 경기체고시절이 돼서는 국내엔 이미 그의 상대가 없었다. 고교시절 3년 내내 전국체육대회 3관왕(인상, 용상, 합계)을 독식하며 세계무대로 발을 넓힌 문유라는 세계여자주니어대회에서도 합계 224kg을 들어 올리면서 금메달을 차지, 당당히 세계에도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일반무대에 진출해 63kg에서 69kg으로 한 번 더 체급을 올린 후에도 인상·용상을 합해 총 240kg의 바벨을 들어 올리며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더 이상 기대주는 싫다

일찍이 역도계의 주목을 받던 문유라는 태릉선수촌 입성도 빨랐다. 열여섯 중3때 주니어국가대표로 입촌 후 지금 23살의 나이까지 8년의 긴 시간이 지났다. 장미란을 비롯한 월등한 실력의 선배들과 어릴 때부터 함께 하다 보니 역도실력이 일취월장하긴 했으나, 아직은 그에게 올림픽 무대는 높은 것이 현실이다. 세계의 강호 러시아, 타이페이, 콜롬비아, 카자흐스탄 그리고 중국의 쟁쟁한 선수들이 세계랭킹 Top 10 에 높다랗게 버티고 있는 터라, 그의 세계랭킹은 14위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지도하는 여자역도대표팀 김기웅감독은 순발력만 보완하면 이번 올림픽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 문유라가 연습 때 인상110kg, 용상135kg정도를 드는데, 목표는 인상113kg, 용상140kg 합계253kg, 현재 세계 2위 기록이 합계 252kg이므로 목표 합계 253kg정도면 동메달이 가능할 수도 있다.

(문)유라는 타고난 신체밸런스를 가지고 있어 근력이 좋고, 유연성이 좋은 선수다. 순발력을 보완하기 위해 다방면의 훈련을 진행 중인데, 이 부분이 보완된다면 3등이 가능하다”는 것이 김기웅 감독의 설명이다. 올림픽이란 무대가 때론 보이지 않는 힘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까닭에 김기웅 감독의 설명이 비현실적이지만은 않다. 첫 올림픽을 앞두고 아무리 마음을 비워보려 해도 쉽게 비워지지 않는다는 문유라는 “오랫동안 유망주란 소리를 들었다.

주변의 기대가 큰 만큼 성과도 내야 하니까 더 떨리고, 생각도 많아져 잠이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유망주란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나의 목표는 인상 3차, 용상 3차, 6번 모두 다 바벨을 들어 올리는 거다. 6번을 다 들어 올렸다는 것 자체가 내가 최선을 다 한 것이니까. 올림픽은 어차피 운이 따르는 대회니 내가 최선을 다한 것에 메달이 행운으로 따라오는 기적을 기대하겠다.”라고 당찬 각오를 내뱉었다. 이런 행운이 따라준다면 더 이상 기대주가 싫다는 문유라가 한국역도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을 런던에서 맞이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Mr크리스티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