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강타할, 5g 셔틀콕의 마술

네트를 사이에 두고 날개 달린 5g의 작은 공을 주고 받는다. 공중으로 솟았다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하이클리어, 핀처럼 네트를 타고 넘는 헤어핀. 높은 타점에서 내려찍은 스매싱 등 현란한 기술들이 자연스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곳, 순간속도가 시속 300㎞에 이르는 셔틀콕이 마치 마술을 부리듯 관중들을 매료시키는 곳, 바로 배드민턴 경기장이다. 웸블리 아레나에서 펼쳐질 세계 배드민턴 스타들의 셔틀콕 향연은 런던올림픽의 백미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배드민턴의 올림픽 메달은 5개. 이 중 중국이 몇 개를 다른 나라에게 빼앗기느냐, 다시 말하면 중국의 독주를 어떤 나라가 막아내느냐가 배드민턴 경기의 관전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 단식의 경우에는 세계랭킹 16위 내에 들어야 한나라당 최대 2명이 참가 가능하며 복식의 경우에는 세계랭킹 8위 안에 들어야 최대 2개조가 출전할 수 있다. 이 규정에 입각해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이 5월 첫째주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참가선수 172명(42개국)의 선수를 발표한 결과, 한국은 총 5개 종목 12명의 선수가 출전권을 얻었다. BWF의 규정에 따르면 단식의 경우 1위부터 4위 내에 있는 같은 국가의 선수는 세 명까지 출전할 수 있는데, 중국이 이 규정의 적용을 받아 남녀단식에 각각 3명의 선수를 출전시킨다. 여자단식의 경우 세계 1위부터 4위까지가 중국선수이며 남자의 경우도 2, 3, 4위는 중국선수의 자리다. 따라서 객관적인 전력상 적어도 단식의 경우는 다른 나라 선수들이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을 목에 걸기란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변수가 많은 올림픽, 하늘이 준다는 올림픽 메달 아니던가. 그래서 중국의 독주 또한 장담하기 힘든 게 올림픽이다.

  • 이유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 사진도현석 작가

Player

7년을 기다렸다, 정재성-이용대 조

세계배드민턴계가 중국독주를 막아낼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인정하는 선수들이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고 있다. 한국배드민턴 남자복식의 트레이드 마크, 정재성-이용대 조(세계2위, 이하 정-이 조)가 바로 그들이다. 168cm의 단신으로 높은 점프력과 강력한 스매싱을 구사하는 정재성과 180㎝ 장신에, 정교함과 유연함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용대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환상의 짝궁으로 세계남자 복식무대에서 중국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 남자복식 역시 세계랭킹 1위는 중국선수들이다. 푸하이펑-차이윈 조(이하 푸-차 조), 정-이 조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매대회 결승에서 만나 서로 승패를 주고 받을 정도로 라이벌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푸-차 조 역시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차이윈이 이용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전위에서 섬세한 네트플레이를 펼치며 파워가 좋은 푸하이펑이 후위에서 강한 공격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준다. 한국의 정재성이 이용대의 네트플레이에 이은 후위공격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서로가 비슷한 색깔을 지니고 있으며 서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천적관계인 두 조이기에, 결국 올림픽 현장에서의 선수들의 컨디션, 경기흐름, 즉 경기초반 심리적인 싸움에서 어떤 팀이 먼저 안정감을 갖고 경기를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메달색깔은 금에서 은으로 또는 은에서 금으로 바뀔 수 있다.

이용대는 “푸-차 조가 스피드도 좋고 정확성도 높은 건 인정한다. 네트플레이가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수비만 잘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우리가 질 때에도 이기고 있는 흐름에서 끝 마무리를 못해서 졌기 때문에 두려움은 전혀없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대표팀의 김문수 코치 역시 “정-이 조가 체력적인 면에서 앞서 있는 상황이라 경기 전체적인 부분을 길게 끌고 가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정-이 조에게 유리한 흐름은 또 있다. 4년 전 올림픽 개최지는 중국이었고, 올해는 영국이라는 점. 중국의 배드민턴 열기는 직접 느껴보지 않은 사람을 알 수 없을 정도다. 경기장이 빨간 옷을 입은 관중으로 가득 차 있는데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큰 함성과 일방적인 응원 속에 경기가 펼쳐져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중국선수가 아닌 선수라면 흔들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러나 이번엔 중국의 독주를 경계하는 유럽에서 열린다. 정-이 조의 심리적인 안정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중요한 또 하나는 정-이 조의 여유다. 큰 대회를 앞둔 선수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훈련을 즐기며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훈련 현장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고, 편안함 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 답을 정재성은 이렇게 말했다. “ 4년 전에는 꼭 이겨야 한다. 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이 있었다. 군문제가 걸려있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전역을 하면서 그 부담감이 완전히 사라졌고, 그래서 경기를 하면서도 차분해지고 경기에 더 집중하는 나를 느낀다”고 했다. 게다가 둘이 함께 한 세월이 7년이다. 고등학생으로 국가대표가 된 막내 이용대를 파트너로 맞아 어느덧 대표팀에서 중고참이자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용대를 지금도 파트너로 삼고 두 번째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으니 이 둘의 호흡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용대는 "내가 앞에서 플레이를 하며 뒤를 볼 수 없지만 셔틀콕이 지나가는 것만 봐도 (재성)형이 어떻게 처리 할 것이라는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며 7년간의 세월이 줬던 기쁨과 절망, 고비와 희망들이 이 둘을 어느 정도로 하나가 되게 했는지를 일깨워줬다. 이제 둘은 마지막을 꿈꾼다. 이용대는 대표팀에 들어와서 처음 만난 파트너 정재성 형에게 4년 전 자신만 목에 걸었던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선물을 안기고 싶고, 정재성은 동생이지만 선수로서 본받고 싶고 응원하고 싶은 이용대와 함께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다. 부담을 떨친 정재성과 4년 전보다 업그레이드된 이용대의 호흡이라면 그 꿈은 예상보다 쉽게 이뤄지지 않을까.

이변의 아이콘성지현

한국배드민턴은 전통적으로 복식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박주봉-김문수 조, 김동문-하태권조, 김동문-길영아 조, 지난 베이징올림픽의 이용대-이효정 조까지 등 올림픽 등 세계대회에서 지금껏 금맥을 이어온 것은 복식이다. 아쉽게도 단식은 중국세에 밀려 침체에 빠지더니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방수현이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이렇다 할 부활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해 2011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슈퍼시리즈 마스터스 파이널 조별리그 여자단식에서 당시 세계 랭킹 1위인 왕이한(중국)에게 2-1(13-21, 21-16, 21-19)로 역전승을 거둔 한국선수가 나타났으니, 바로 한국배드민턴의 기대주 성지현이었다.

그가 주목 받은 이유는 또 하나가 있다. 바로 배드민턴 국가대표 출신 부부, 현 배드민턴 대표팀 성한국감독과 김연자 한국체대 교수의 딸이라는 점. 부모의 배드민턴 유전자를 제대로 물려받아 일찌감치 국가대표가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나 지난해에 세계랭킹 1위를 꺾은데 이어서 지난 3월 전영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 프리미어 여자단식 32강전에서 세계 2위 중국의 왕신을 2대0(21-8, 21-13)으로 완파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닌 이변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성지현이 왕신을 물리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 지난해 1월 코리아오픈 때 8강전에서 당시 세계 1위였던 왕신을 격파해 배드민턴계를 놀라게 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09년 8월 마카오오픈에서 여고생 신분으로 당시 세계 1위 저우미(홍콩)를 꺾은 적도 있었으며 지난해 프랑스오픈 32강전서는 당시 세계 2위 왕 시시안을 물리치며 '이변의 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성지현은 이변과 부진을 반복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여왔다. 기복이 심했다는 것은 본인도 인정하고 있다. “우버컵(세계단체배드민턴선수권 여자부 경기) 뛰기 전까지만 해도 많이 불안해서 힘들었다. 욕심을 많이 냈던 것 같다. 급한 나머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 지곤 했지만 우버컵을 뛰면서 안정을 되찾아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안정감을 되찾은 성지현은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는 마음으로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여자단식은 남자에 비해 랠리도 길어질 가능성이 많고, 파워보다는 정확성이 요구되는 경기라 어떤 선수가 실수를 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므로 실수를 줄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체력훈련에도 좀더 치중하고 있다. 중국선수들에 대한 대비도 잊지 않고 있다. 중국대표선수 출신(첸강)코치를 초빙해 지도를 받으며 중국선수들의 성향을 파악하는데 애쓰고 있다.

성지현은 올림픽의 메달은 하늘의 뜻으로 돌리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이다. 변수가 많다는 점,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중국선수에게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는 점을 무기로 세계1위부터 3위까지의 중국선수가 모두 나오는 여자단식에서 세계11위인 성지현이 통큰 도전장을 냈다. 큰 대회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변을 연출했던 이변의 달인 한국배드민턴 여자 단식선수 성지현이 런던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이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길 기대해본다.

Super Rookie

세계를 놀라게 한 핫 플레이어손완호

지난 4월 29일, 인도에서 열린 2012 인도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 결승전. 마지막 승패가 갈리자, 우승 선수는 세계랭킹 1위 리총웨이를 이긴 기쁨을 만끽하며 라켓을 집어 던진채 배드민턴 코트에 누워 두 손을 번쩍 들고 포효했다. 그날따라 우승 선수의 가슴에 달린 태극기가 더욱 빛나 보였다. 그랬다. 세계랭킹 1위를 이긴 선수는 한국의 무명 배드민턴선수, 손완호였다. 이 대회가 끝나자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은 손완호의 결승전을 ‘a titanic match(엄청난 대결)’이라 표현하며, 주변을 놀라게 한 핫 플레이어에 손완호를 지목했다. 이로써 그는 올림픽에 나서는 세계의 강력한 우승후보들에게 ‘주목해야 할’ 선수가 됐다.

런던행 막차를 타다.

인도 오픈 슈퍼시리즈 전까지 손완호의 올림픽 출전은 불투명했다. 세계배드민턴연맹 규정에 의해 세계랭킹 16위까지만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지는데, 손완호는 17위였기 때문이다. 출전권을 따기 위해 숱한 국제대회를 출전했지만 번번이 8강 문턱에서 좌절하기 일쑤였고, 게다가 세계 15, 16위의 선수들의 선전에 랭킹포인트의 차이는 더욱 벌어져 가던 상황이었다. 손완호를 지도하는 국가대표팀 손승모 코치는, 출전여부가 결정되는 인도 오픈대회 출전 당시 4강진입도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손코치는 “지금까지 큰 시합에서 성적을 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 잘해야 8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손)완호의 표정이 다부지더라. 경기 내내 스피드가 떨어지질 않았다”며 당시를 설명했다. 8강부터 상대들이 더욱 강력해졌다. 세계랭킹 5위, 37살의 노련한 덴마크의 피터게이드였다. 손완호는 피터게이드와 6번 맞붙어 모두 패했던 전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2-0으로 우승후보를 완파하며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고, 이후 준결승에서 인도의 파루팔리도 2-1로 제치더니 결승에서 만난 세계랭킹 1위, 말레이시아의 리총웨이마저 2-1의 역전 우승까지, 세계랭킹 탑 10에도 들지 못한 선수가, 런던올림픽 금메달 1순위 후보들을 연이어 물리치는 대파란이 일으킨 것이다. 이변의 드라마의 주인공 손완호는 “올림픽 출전티켓이 걸린 마지막 대회였기에 간절했다. 셔틀콕이 크게 잘 보이더라. 이기고 나니 그동안 고생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울컥했다.”며 우승의 감격을 이야기했다. 이 대회로 손완호의 세계랭킹은 14위로 뛰어올랐고, 그는 간절히 원하던 런던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게 됐다.

15년의 꿈,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올림픽 우승후보들을 이길 수 있었던 그의 저력은 ‘끈질김’이다. 발 빠르게 움직이며 강한 ‘스매시(=스매싱)’를 날리는 것이 유리한 종목인 남자 단식에서 손완호는 파워가 조금 부족한 선수다. 하지만 상대방의 공격을 끈질기게 받아치는 것만은 세계 1위 선수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인도 오픈 결승전, 코트 구석구석 떨어지는 끝없는 리총웨이의 스매시를 손완호는 끝까지 따라붙어 받아 넘겼고, 지친 리총웨이는 스매시 대신 다른 기술을 구사하다 실수를 연발하며 결국 패하고 말았다. 손완호는 “뛰는 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끝까지 따라 뛰며 공을 받아 넘기면 상대가 실수를 하게 돼있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하고 붙을 때, 나의 이런 끈질김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 했는데, 이번 런던올림픽의 남자단식 우승후보들이 대부분 30대 인걸 감안하면 (랭킹1위 리총웨이-31살, 랭킹6위 사사키쇼-31살, 랭킹2위 린단-30살, 랭킹5위 피터게이드-37살) 25살 젊은 유망주 손완호의 이변의 드라마가 런던에서도 가능할지 모른다.

남자단식은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다시 돌아온 대표팀 맏형 이현일(세계랭킹 7위)이 그동안 각종 대회에서 남자단식의 간판 역할을 해내며 메달을 석권했지만, 올림픽 메달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현 코치를 맡고 있는 손승모의 은메달이 유일하다. 그래서 런던올림픽을 앞두고도 단식은 복식에 비해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 남자 단식 손완호의 꿈은 금메달이지만 현실적인 목표는 메달권이다. 워낙 중국과 일본, 인도네시아의 쟁쟁한 선수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리총웨이가 버티고 있어 메달권이라는 목표도 비현실적이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10년이 넘게 지켜본 손승모코치는 “이번에 세계1위를 꺾는 (손)완호를 보며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때만큼만 간절하면 올림픽에서도 해볼 만하다.”라고 전망했다.

“배드민턴에 복식이 아니라 단식도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며 런던올림픽에 임하는 포부를 밝힌 손완호. 과연 그의 올림픽 드라마는 어떻게 끝이 날까. 금빛 엔딩을 기대해본다.

 

Posted by Mr크리스티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