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하여 대한민국 대표 미남의 자리를 21세기까지 굳건히 지키고 있는 장동건. 도저히 묻힐래야 묻힐 수가 없는 빛나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이런 그도 딱 한번 상대 배우의 기에 짓눌려 여심의 방향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 그 대상은 그의 아성을 틈틈히 위협하는 꽃미남 원빈도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바로 이브의 모든 것에 동시 출연한 한재석. 주인공 채림의 상대역도 재벌 2세의 영광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던 초라하기 짝이 없었던 그의 캐릭터가 방송사의 CEO역을 맡았던 잘 차려입은 정장의 장동건에 비해 그 존재감이 빛났던 것이다.

 

 

 

간혹 지금도 여성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장동건 보다 멋있었던 이 남자'를 향한 추억은 그가 화려한 역할을 맡아서도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비록 드라마를 이끄는 주역은 아니었지만 마지막까지 첫사랑을 지켜주었던 그의 순정에 여성들은 눈물을 쏟아부으며 그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내 기억속 가장 안타까운 비디오속 메시지는 편지의 박신양이 아니라 이브의 모든 것의 한재석이었다. "그러니 영미야 이제 그만 널 용서해주렴." 배반과 배신 속에 끝없이 자신을 상처 입혔던 허영미 (김소연분)를 향해 쏟아놓은 연시는 그의 우수에 젖은 눈동자와 더불어 마지막까지 희생이라는 이름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큰 사랑을 그려냈었다. 화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가 어떤 위치에 있다 할지언정 적어도 "짝사랑하는 한재석"을 당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드라마 울랄라부부에서 가장 큰 반응을 이끌어낸 초반의 공로자는 누가 뭐라해도 신현준이다. 아니 그럴 수 있었겠는가. 김정은의 연기를 담은 비디오를 몇십회씩 분석했다는 그이니만큼 아줌마에 이어 김정은의 캐릭터까지 모사한 그의 역할은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쁜 남편 고수남에게 받은 상처를 그 자신이 리버스하여 나여옥의 한풀이마저도 동시에 소화해내는 신현준의 코믹연기에 대한 넓은 스펙트럼은 아무리 감탄을 쏟아낸다 해도 그 감동이 모자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가 다시 영혼이 뒤바뀌어 원래의 고수남을 연기하기 시작하고나자 한가지 큰 불만과 허전함을 느끼게 됐다. 더이상 신현준을 사랑할 수 없어진 것이다. 드문드문 남아있는 나여옥의 앙금이 문득 그의 연기를 사무치게 했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성실하게 썩어 빠진 남편 고수남을 연기해주는 신현준을 보며 소리쳤다. 다시 한번 영혼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를 마음껏 좋아할 수 있게. 하지만 안녕. 더이상 그에게는 사랑스러운 나여옥의 모사가 남아있지 않았다.

 

 

 

 

신현준이 본격적으로 나쁜 남자의 극을 달리는 고수남 카드를 집어들자 그 반동에 의한 나머지 소망은 나여옥의 첫사랑, 현우 오빠에게 꽂히게 되었다. 도대체 몇년을 사랑한 거야...? 싶을 만큼 그들이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 조차 생소했을 어린 시절에 벌써부터 나여옥에게 좋은 가정을 장만해주리라는 꿈을 가지고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랑의 비전을 가진 남자, 장현우. 그는 언제나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나여옥을 바라볼 수 있는 남자였다. 고수남이 내연녀에게나 내보일 수 있는 달콤한 밀어의 속삭임을 장현우는 나여옥을 위한 연시로 사용한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나만을 사랑한다 속삭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가진 남자. 나여옥이 남편 고수남에게 그토록 바라다 바라다 도무지 안되어 제풀에 꺾여 넘어진 그런 꿈 같은 사랑. 이런 사랑을 받았던 나여옥이 그저 생활과 임신에 맞물려 남편에게 받은 그 모진 수모와 야멸찬 말버릇을 어떻게 버티고 감당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울랄라부부에 등장하는 한재석의 맡은 장현우라는 캐릭터는 짝사랑에 관해서만큼은 완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을 내보여준다. 덧붙여 이것은 한재석이 가장 잘할수 있는 연기의 근간이다. 심지어 그동안은 어쩐지 주인공에 비해 초라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던 그의 배경과 달리 이번에는 오히려 남편 고수남 보다 높은 직책을 가진 근사한 차를 모는 벤츠남으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박태환에게 오리발을 달아준 격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근 십여년 만에 갖게 된 날개를 너무나 제대로 펄럭일 수 있었던 한재석의 부활이다. 한재석이 이렇게 다정한 눈으로 상대를 응시하며 이렇게 꿈 같은 목소리를 속삭일 수 있는, 정장차림이 마치 하나의 풍경처럼 근사한 비주얼을 갖춘 남자라는 것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예상하지조차 못했다.

 

오래전 병역 비리로 연루 되어 몇년 동안이나 암흑 같은 지난 세월을 지내온 그였다. 물론 그가 받은 죄의 값이야 스스로 치루고 감당해야할 자신이 만든 실책이었지만 당시 상황을 돌이켜볼때 똑같은 강도의 죄를 짓고도 입대후 무리 없이 브라운관에 복귀하여 무슨 사마라느니 온갖 찬양을 들으며 화려하게 안착했던 다른 동료 배우들과 비교해봤을때 그가 감내해야할 죄의 몫은 너무나 크고 무거웠다.

 

 

 

울랄라부부를 보며 매회 분통을 터뜨리다가도 한편 작가에게 감사하게 되는 것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 고수남이 미워지면 미워질 수록 상대적으로 현우 오빠의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 미묘한 배려 때문이다. 그것은 배우 한재석을 위해서도 다행인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드라마에서 그의 존재가 미미했다면 상상할 수조차 없을 불쾌함이 아예 시청 거부를 불러 일으켰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이 드라마에서 현우 오빠의 존재가 없었다면 그저 맥없이 당하기만 하는 나여옥이 그 누구에게도 위로 받을 상황을 만들어놓지 않았더라면 이 드라마를 보는 일이 얼마나 큰 고행이었겠는가. 울랄라부부에서 한재석이 맡은 장현우라는 역할은 드라마의 불편함을 극으로 치닿지 않게 제어해주는 에어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 여기 있으면 눈물 밖에 흘릴 게 없어. 여옥아. 지금까지 남을 위해서 살았다면 이제 너도 니 인생 찾아야지. 내가 도와줄께." 아. 나여옥이 너무나 듣고 싶었을 그 한마디. "그런걸 아니깐 오빠지... 너 데리고 가려고 왔어. 여옥아. 우리 같이 올라가자." 그것은 마치 10년전 이브의 모든 것에서 "이제 그만 널 용서해주렴..." 하고 속삭이던 그 오빠의 목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한재석은 어쩜 10년 뒤에도 이처럼 꿈같은 위로를 속삭일 수 있는 것인가. 10년이 지난 세월 속에서도 그의 위로는 전혀 녹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홀로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던 그의 부활을 비로소 예고하는 한마디였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인연이 아니면 안 되는 거야!" 하는 월하노인의 입방정에 "영감탱. 가만 안둬!"를 소리치고 "월하님. 진심으로 누군갈 사랑해 보신적 있으세요? 없으시잖아요. 진실한 사랑은 인연을 뛰어넘을 수 있어요." 하는 나르샤에게 "옳지. 그래. 잘한다." 박수치면서도 한가지 불안한 것은 결국 이 드라마에서 주장하는 부부의 인연에 대한 집착이 깨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하필이면 여옥을 지켜줄 사람이 한재석이라는 위치도 더욱 이 불안함을 중첩 되게 한다. 한재석의 짝사랑은 분명 아름답지만 그것이 오랜 세월에도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한재석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어도 그저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너 놓지 않을 거야. 그러게. 그땐 널 위한다고 떠나 보냈는데 널 위한 게 아니었어. 그동안 니가 받은 고통이 너무 커. 아직 힘들어하잖아. 아까 그 사람들 속에 같이 있으면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나한테 남겨진 그림자 같은 건데 어떻게 하겠어요. 떼버리고 싶다고 떼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구해줄께. 이제 나만 바라봐."

 

 

 

나여옥의 상처를 치유해줄 유일한 존재인 현우오빠의 사랑이 그저 고수남의 반성과 자아성찰에 필요한 계기로 멈춰 끝나지 않기를. 그 누가 날 너처럼 사랑해줄까 누가 나처럼 널 사랑해. "그 누가 날 너처럼 사랑해줄까 누가 나처럼 널 사랑해 천 번을 헤어진다고 해도 그 말 진심 아니라는거 알잖아 딱 한 번 더 사랑을 믿어줄래 나를 한 번 더 받아줄래 내가 돌아갈 곳은 너뿐이야 내 남은 사랑 너에게 바칠게" 고수남의 씬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던 성시경의 이 노래가 장현우의 감정에 어찌나 잘 어울리는 완벽한 하모니로 들려오던지.

 

 

 

"저희 집안 일입니다."

"제 여자 일입니다."

 

 

 

끝까지 두 사랑믜 일이 아닌 "집안의 일"이라 말하는 전 남편 고수남의 비겁함을 뚫고 장현우는 외친다. 내 여자의 일이라고. 그건 너의 일이 아니라고. 이 답답했던 드라마 속에서 처음으로 시원하게 가슴이 뚤리는 한마디였다. 짝사랑 전문 배우인 한재석이 이번에야말로 진짜 해피엔딩을 껴안을 수 있길 바란다. 나여옥을 위해서가 아닌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모든 여성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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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크리스티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