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휴즈 감독과 QPR 유니폼을 들고 있는 박지성 (사진제공 : 연합뉴스) |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 이적을 놓고 고민하던 박지성은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이적을 결심한 주된 고민이자 이유였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시작해 보고 싶단 속내를 꺼냈다. 이름 알려지지 않은 선수에서 2002월드컵의 주역으로, J리그에서 유러피언 드림의 발판 네덜란드리그로, 아인트호벤에서 세계적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나아가고 선택하고 부서지고 커가면서 멈추지 않았던 도전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성공의 보장은 문제이지 않고 또 그 보장은 가능하지도 않다. 지금껏 그랬듯 모두가 무모한 일이라 했지만 멈추지 않았던 그 도전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멈추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많았고 또 아쉬움이 컸다. 맨유에서의 생활은 환상적이었고 행복했지만 맨유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한 경기가 있었다. 지난 시즌 후반기 경기였던 35라운드 맨유 대 에버튼전이었다. 맨유는 이날 경기 종료 10분 전까지 4-2로 앞서다 경기 막판 내리 2골을 내주며 4-4로 비겼다. 맨유에겐 최악의 결과였다. 맨유는 이날 홈경기 무승부로 맨시티와의 선두 경쟁에서 치고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고 결과적으로 우승은 맨시티의 것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홈에서 경기 종료 10분여를 버티지 못하고 무승부를 기록한 선수들을 질타하고 불같이 화를 냈지만 사실 이날의 최대 미스는 선수 교체 타이밍을 놓친 퍼거슨 감독의 선택이었다. 그 중 하나가 4-2로 앞서 있는 상황에서 수비력이 뛰어난 박지성을 교체 투입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맨체스터 지역 언론은 물론 박지성 스스로에게도 무척 실망스런 결정이자 결과였다. 200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첼시와의 결승전에서 예상 밖의 엔트리 제외와 맞먹는 고통이었다.
7년만에 맨유와 결별을 선택한 박지성 (사진제공: 연합뉴스) |
퍼거슨의 최대 미스, 얼마 남지 않은 맨유에서의 시간
박지성은 에버튼전에서 끝내 벤치를 벗어나지 못했고 맨유의 우승 경쟁이 험난해지는 결과를 지켜봐야만 했다. 박지성은 크게 낙담했고 실망했다. 맨유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던 심경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가 됐던 경기다.
실제로 박지성은 지난 3월4일 27라운드 토트넘전 교체 출전 이후 이날 경기까지 프리미어리그 8경기 연속 결장하며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박지성이 처음으로 퍼거슨 감독을 직접 찾아가 면담을 요청한 시기도 이 때다. 그러다 우승의 분수령이었던 4월30일 맨더비 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무뎌진 감각을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박지성은 결국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후반 이른 시간대 교체 아웃되고 말았다. 박지성의 마음은 그렇게 흔들려갔다.
박지성은 오프시즌 국내에서 휴식을 취하던 6월 중순 만났을 때, 이적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 그날 박지성은 빨간색 옷을 입고 촬영 중이었는데 만약 이번 여름에 파란 색 유니폼을 입는 팀으로 이적하면 촬영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이냐고 웃으며 농 아닌 농을 던졌다. 만약 이적하면 포토샵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농으로 받아쳤지만 이 일이 이제 현실로 마주해 있다. QPR의 홈 저지는 파란 색 줄무늬다.
6월 중순은 QPR의 마크 휴즈 감독이 한국을 찾아 박지성과 이적 이야기를 주고받던 시기였다.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박지성은 이미 6월 중순께 QPR 이적에 대한 마음을 어느 정도 굳히고 있었다. 구단과 구단이 구두 계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선수가 이적에 반대할 때 쓰는 이적 거부권은 때문에 박지성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박지성의 마음이 먼저 움직인 선택이었다.
QPR 페르난데스 구단주와 밝게 웃는 박지성 (사진제공 : 연합뉴스) |
박지성은 언제 QPR행 마음 굳혔나
QPR에서 또 다른 축구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박지성은 지금껏 그랬듯이 소리 없이 자기 길을 갈 것이다. 한편에선 맨유보단 QPR에서의 경쟁이 박지성에게 수월할 것이라고 말한다. 포지션 경쟁자들의 면면을 본다면 이해 못할 전망은 아니지만 프로무대에서 그것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 쉬운 경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박지성은 ‘생존’이란 표현을 썼다. 좋아하는 축구를 맘껏 하고 세계적인 클럽과 리그에서 뛰었지만 단 한 순간도 경쟁과 생존이란 현실적 굴레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뛰고 싶고 살아남고 싶어 하듯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자신만이 경쟁과 생존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고 했다. QPR이라고 다를 것 없는 생존의 현실이다.
사실 박지성의 입에서 ‘생존’이란 센 표현이 자주 나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스스로에게 보다 솔직해진 박지성을 만날 수 있다. 현실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가능하면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안 되면 괜하게 욕심내지 않는다. 축구는 잘 하고 싶지만 유명해지고 싶진 않다던 박지성도 이젠 그 바라봄이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자 축구의 한 부분임을 알고 있다. 달라졌다. 물론 가장 큰 변화는 ‘때문에’를 쓰지 않는 것이지만.
‘때문에’ 기다려진다. 달라졌지만 어쩌면 같을 도전에 대한 기다림이자 기대다. 소속 클럽의 규모와 조건 그 안에서의 역할과 입지 등이 맨유와 QPR에서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걸 멈추지 않았던, 생존을 위해 싸웠지만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의 걸음은 맨유와 QPR이 다를 게 없다.
다시 한 번 시작해보고 싶었단 그의 새로운 도전이 이제 막 시작됐다. 새로운 선택에 대한 결과야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지금껏 그랬듯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의 도전은 결과를 떠나 또 한 번의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8월18일 토요일 밤11시 런던 홈경기로 열리는 QPR 대 스완지시티의 2012-13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이 그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