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우입니다. 가슴이 답답하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몇 마디 적겠습니다. 
아무래도 전공자 입장에서 다소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라 내용이 '꽤' 길어질 수도 있으니 이점은 미리 양해부탁드리겠습니다.  


12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실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금요일에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규탄 및 철회에 대한 공동성명에 참여해주십사 하는 글을 올렸었습니다. 
(http://cafe.daum.net/ilovenba/34Xk/270409)


말씀드렸던대로 그 친구들은 월요일에 광화문에서 1,991명의 여러 학생, 시민분들의 서명을 받은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그 자리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시위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http://www.hankookilbo.com/v/ecebf73b7ea54fd49786ab8312377352)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가슴이 답답하고 뭐라 할 말이 없어 담배를 많이 폈습니다. 그 친구가 페이스북에서 제게 공동성명을 제안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서명을 제안하는 일밖에는 제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것부터 지금까지도 제가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하지도 않고 있다는 점이 그 친구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수업이 있어 연구실에 계속 앉아 수업 관련 연구들을 뒤적뒤적 하다가 누군가 연구실에 가져다놓은 신문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그 신문은 중앙일보였는데 그 신문을 가져다 놨을 그 누군가는 우리 모두에게 한 번 보라는듯 1면을 연구실 테이블에 펼쳐놨더군요. 잠시 일어나 물을 마시려다가 뭐라고 써놨을지 궁금하여 후회할 걸 알면서도 이리저리 넘겨가며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감정이 아무래도 가라앉지를 않아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네요. 요즈음 일이 많아 보게 되면 이렇게 될 것 같아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데.. 

하.. 그 기사 하나하나를 읽을때마다 끌어오르는 분노란. 대체 이것들은 아니 이새끼들은 역사를 대체 뭐로 보는건가? 


언급하기도 민망한 내용들이지만, 기억나는 기사를 다시 찾아보니 다음 기사네요. 

- 교과서에 숨은 편향 ... 박정희 사진 1장, DJ 4장, 김일성 3장 
(http://news.joins.com/article/18844676) 

내용을 읽어보시면, 그 지적하는 것들이 참으로 한심하고 분통터지는 것들뿐입니다. 
기사 내용 중 나오는 몇 가지만 언급해볼까요?

금성 :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인 자세도 국민이 등을 돌리는 한 원인... 민주적 권리에 대한 요구를 탄압
-> 잘못에 대한 서술 많아
금성 : 인민위원회는... 농민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으로 토지개혁 실시
-> 북한 토지분배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할 소지 

두산동아 : 이승만은 귀국 후 친일세력들에게 많은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이었다. 
-> 잘못에 대한 서술 많아
두산동아 : 북한은 남한 총선거 실시되자 곧바로 정부 수립... 사회주의국들이 승인
-> 북한을 남한과 동등한 정부 수립으로 인식

천재교육 : 1946년 3월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 북한 토지분배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할 소지

짚어보면, 이들이 중점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들은 이승만에 대한 비판/북한에 대한 긍정적 서술 부분입니다.
사실상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박정희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크게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겠지요. 그리고 그 이전 일제시대 부분 같은 경우, 기존 교과서들이 철저하게 일본 제국주의/식민지 비판에 입각해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이 테클을 걸 부분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쓰고 싶은대로 썼을 때 문제가 생기겠지만, 교학사 교과서 때 그랬듯이 친일에 관해서는 그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때쯤인가요? 정부와 뉴라이트, 수구 언론에서 검인정 교과서들에서 유관순을 누락시켰다고 '종북' '친일' 교과서라고 비판해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지요? 이에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한 번 알럽에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관련해서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다음 링크를 확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http://cafe.daum.net/ilovenba/34Xk/250852)

이때 제가 썼던 내용은 간단히 말해, 그들이 지적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맥락에서, 오히려 해방 직후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행적을 정당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찾아낸 것이 유관순이었고 유관순에 대한 2009년 학계에서 발표된 성과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연구란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된다면, 그렇다면 그 유관순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에 대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글에 달린 키드가되고싶어요님의 댓글도 함께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들이 하고자 했던 작업은 결국 기존 교과서들을 종북적인 입장에서 쓰인, 좌익 사상에 편향된 교과서라는 프레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본다면, 그 작업은 이미 2009년 대안교과서부터 치밀하면서도 꾸준하고 일관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존의 교과서를 좌우 대립, 아니 대한민국과 종북세력의 대립으로 재단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좌우 이념에서 자유로운 '중립적이며' 그렇기에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올바른' 교과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이 앞에 제가 기사에서 가져왔던 그들이 지적하고 있는 기존 교과서들의 문제들이 의미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들이 이야기하는 '올바른'이란 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대체 무엇인가? 

여기서 좀 길지만,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보통 역사학개론에서 이야기하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1) 과거에 대한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서 2) 과거의 사실들을 통해 교훈을 얻기 위해서 3) 정체성에 대한 문제, 즉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근대 역사학이 하고 있는 작업들은 바로 3) 지금 내가 발담고 있는 현재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모든 시대를 다루고 있는 연구들도 그렇겠지만 특히나 동시대에 대한 연구, 즉 근현대사 연구는 대개 여기에서 출발하기 마련입니다. 지금 현실 문제의 기원은 어디이며 그것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분과적인 이야기로 흘렀지만,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나라 근현대사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서입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일제시대에는 근현대사 연구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할 수도 없었고 이야기하려 하는 사람도 식민지라는 당시 상황 속에서 당대사가 아니라 그 이전의 통사를 다뤘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근현대사 연구가 시작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회경제사가들이 대거 납북되었고 6.25전쟁 발발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의 반공을 앞세운 독재 통치 아래에서 역사학계의 역량은 어떻게 그 시대를 다뤄야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1960년 중반 무렵에서야 연구들이 축적되기 시작했는데, 조선후기의 자본주의의 맹아를 이야기하면서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들과 일제시대를 식민지 수탈론의 관점에서 정리하는 연구들이 등장한 것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해방 이후에 대해서는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이야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25전쟁 이전까지의 역사에서 특히나 독립운동과 국가 수립, 6.25전쟁은 공산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죠. 누가 더 독립에 공이 많았느냐, 뭐 이런 일차원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분명히 이 땅에 존재했고 적지 않은 역할들을 수행했다는 것은 분명하며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들이 활동했던 해방공간과 이승만정권의 친일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날이 강해지는 반공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무리 학계라고 할지라도 이를 감히 다루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막 독립한 국가의 역사학계가 가진 역량적인 한계도 무시할 수없음은 물론이구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혀 이야기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식적인 역사가 아니라, 과장을 조금 보태, 저항자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다루었던 것은 역사학계가 아니라, 당시 정권에 저항하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특히 근현대사에 대한 탐구가 지금 현실 문제의 기원은 어디이며 그것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데서 출발한다고 했었던 것도 이와 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억압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이들은 그들이 디딘 현실 문제의 기원을 찾고 그를 통해 정권에 대한 저항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이 역사로부터 찾았던 것은 식민지 유산의 청산 그리고 대한민국에 집권해왔던 정부들의 친일문제였던 것이죠. 해방 이후 우리는 식민지 문제를 청산하지 못했고 친일파들은 그대로 정권에 참여했고 득세했으며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 드디어 역사학계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연구가 등장합니다.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연구는 출간 즉시 금서가 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돌려읽혀지면서 소위 운동권의 필독서가 됩니다. 통일지향적 역사인식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반공적인 분위기에서 우익 계열만을 다루었던 그동안의 역사 연구를 비판하며 좌익 계열 역시 함께 해방운동의 한 날개로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방운동의 한 축으로서 좌익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그것이 역사학에서 함께 다루어져야만 한다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는데, 이 연구는 비록 일제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반공을 통해 독재를 자행하는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이러한 문제의식을 포함하여 나온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연구가, 역시 금서가 되긴 했지만, 1978년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란 책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역사 속에서 분명히 존재했던 좌익운동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으로까지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반공주의 비판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었던 셈입니다. 결국 이는 해방 이후 식민지 유산에 대한 청산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반공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진행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지게 되었단 것, 정권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적 토양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1980년대 들어서 이러한 흐름은 당연히 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특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일부에서는 더욱 급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것은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을 '국사'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 혹시 들어보셨나요? 대학교에 들어가서 '나쁜' 선배들과 이야기하면서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던 80년대 학번들의 이야기들. (하지만 검인정 세대였던 저 역시도 이러한 경험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국가는 그 역사에 대해서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지만,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저항운동세력 안에서는 이미 내부적으로 깊이 공유하는 '또다른' 역사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그리고 '광주'는 독재 정권에 저항하게 만드는 거대한 동력으로 작동했습니다. 왜 그들이 '나쁘며' 왜 우리의 저항이 '당위적이고 선한' 것인지를 '또다른' 근현대사가 보여주었던 것이죠. (저는 이러한 역사인식에 비판적이지만, 글과는 상관없으니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민주화 이후, 드디어 이 '또다른' 역사가 기존의 '국사'를 대신하여 공식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승리'라고 할까요?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5.18광주사태'가 아니라, '5.18광주민주화항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또다른' 역사가 승리한 순간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면 너무 나간걸까요? 그러나 학계에서 식민지 공간에서의 좌익 운동, 해방 공간의 좌우 갈등에 대한 연구들이 90년대를 전후해 쏟아져나오게 되었다는 사실로 봤을 때도, 그것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제가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근현대사를 둘러싼 역사전쟁은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역사와 함께 진행되었으며 이는 동시에 저항의 원천이었다는 것입니다. 지하에서만 이야기되었던 그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이야기되고 그것이 기존의 국가주의적, 반공주의적인 근현대사를 점차 대체해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물론 이 과정이 쉬이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 입장에 따라 갑론을박은 당시에도 여전히 존재했고 역사학계 내에서도 '또다른' 역사의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네, 정말 한참을 돌아왔지만, 다시 교과서 문제로 돌아가볼까요?


국정교과서 체제에서 근현대사 파트가 떨어져나온 것은 2000년대의 일입니다. 아마 제 언저리부터가 근현대사를 검인정 체제로 배웠던 세대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연도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아마도 2002년이었다고 기억되네요. 이후 그 체제가 유지되다가 그것이 다시 한국사로 통합된건 엠비 때라 생각됩니다. 그건 아마도 2009년 무렵이었던 것 같구요. 그 시점에서 뉴라이트 세력이 만든 기파랑 대안교과서가 논란이 되었을텐데 그 문제로 친구들과 세미나를 했던게 아마 그때쯤이라고 기억됩니다.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논쟁이 시작된 것도 바로 이 시점입니다.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10년의 민주당 정권의 집권을 거쳐 다시 한나라당이 집권한 시점부터 다시 시작된 셈이죠. 그리고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께서 이 통합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지시하시게 됩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건 결국 교과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파트는 근현대사 파트이며 정권의 입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점입니다. 


왜 그렇게 그들이 여기에 목매고 있는 걸까요? 사회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역사교육이 정말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여서일까요? 정말 검인정 한국사교과서들이 종북세력에 의한 편향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일까요?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인정 체제로 국사에서 떨어져나왔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그것이 절대 집필진의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편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미 목차/장/절의 구성과 그 안에서 담고 있어야 하는 내용들을 국가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정해두고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교과서는 검인정에서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국가의 짜여진 가이드라인 안에서 만들어진 교과서들이 북한을 찬양한다거나 국가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내용을 담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럴 정도의 자의성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아니면 혹시 민주당 정권 하에서 만들어진 검인정체제이기 때문에? 그것 역시 얼토당토않은 말이죠. DJ정권도 노무현정권도 기본적으로 수구보다 더 포용력이 있고 사고가 좀 더 자유로웠을 뿐, 좌파 정권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습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구요. 다만, 분명하게도, '또다른' 역사의 내용이 학계의 논의를 거쳐 교과서에서 이야기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존보다 폭넓게 반영되는 부분이 있게 되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정리한다면, 민주화 이후 십여년이 지나 근현대사 파트가 한국사에서 떨어져나왔고 여기에는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과 함께 형성된 역사인식이 반영되었습니다. 하지만 언급한 것처럼, 그리고 아마 검인정 교과서로 공부하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오히려 그것은 지금 집권세력의 지적과는 달리,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한 서술에서 전혀 벗어나있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식민지와 독재란 시련을 겪었음에도 어떻게 대한민국이 민주화와 함께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는지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쓰여져있지 않던가요? 그리고 사실 더 솔직하게 말해 근현대사 파트는 진도상 박정희 정권 이후로는 잘 다루지도 않고 자세하지도 않습니다. 또 부끄럽지만 역사학계의 성과도 이제서야 겨우 70년대를 다루기 시작하는 단계라서.. (....) 그러나, 그럼에도 이것이 갖는 함의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비록 교과서에 겨우 반영되었을 뿐이지만, 거기에는 그 긴 세월 제국주의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냉전분단체제의 모순 속에서도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무게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무게는, 정말이지, 결코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 새벽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 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라는 것이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이 현재의 근현대사 교과서 서술에 내리는 몇 마디 말로 내리는 평가라는 것들이, 그 '비판'이 얼마나 몰염치하며 폭력적인 짓거리인지 말입니다. 결국 그들은 역사 교육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역사교과서의 내용 그 자체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역사교과서는 그저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대대적인 논란을 만들어가며 그들이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이것이 갖는 효과를 노리고 있는거죠. 즉 이들에게 근현대사 교과서의 '올바른' 서술이란, 단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를 사회에 강제하며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동안 줄기차게 저항세력들을 중심으로 공유해왔던 근현대사를 통한 기득권에 대한 비판, 이제 그만 두어라, 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시대, 너희들이 그토록 외쳤던 저항의 시대는 끝났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라." 


결국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올바른', 이란 그런 의미입니다. 이것이 곧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회통합의 방식인 셈입니다. 전 어떻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인 분열을 막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가가 규정한 내용으로 역사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쉽게 나오는지 신기합니다. 아마도 그게 그들의 마인드겠죠. 국가가 갖고 있는 내부의 모순이 더 이상 가릴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지고 있으나, 기득권이 그리고 국가가 그것을 강제적으로 봉합하며 문제를 덮고자 할 때 늘상 등장하는 해결방식. 1974년 유신체제 당시의 국정교과서가 그랬고 지금의 아베정권이 그렇듯이 박근혜 정권도 똑같이 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결국 그대로 관철되었을 때, 여전히 정권에 대한 저항은 존재할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1987년 그 기나긴 투쟁을 통해 얻어낸 '승리'가 가지고 있었던 상징적인 의미가, 눈에 보이는 좌절감 속에서 후퇴하게 될 것이란 점 역시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이상(Ideal)을 위한 저항을 가능케 했던 '또다른' 역사가 종북적인 편향을 가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었다는 그들의 폭력적인 프레임 속에 갇힘으로써 그것이 가지고 있었을 수많은 역사적 가능성들의 의미가 부정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이자 죽기 직전까지 보편적 이상을 위한 사회운동에 힘썼던 고 스테판 에셀이 그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프랑스 사회에 던졌던 한 마디를 전하며 긴 글 마치겠습니다.




"분노하라!"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소 따분할 수 있는 내용의 긴 글 읽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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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제 입장을 밝히자면, 사실 저 역시도 전공자로서 근현대사를 서술해온 기존의 관점에는 비판적이며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는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진 무수한 근대 역사학의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말입니다. 또한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서술에서도 벗어나 그간 역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많은 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작업은 이전의 근현대사가 갖는 무게를 인정하면서 진행되어야 하며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이념에 의해 진행되는 것에는 결단코 반대합니다.  


덧2. 다소 논쟁적일 수 있으니 다른 의견있으시면 제기해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한 피드백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내일 오전에 또 발표가 있어서... 다소 늦을 수도... 이것도 너무 길어졌네요. 거의 레포트 수준인ㄷ.. (....)



Posted by Mr크리스티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