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김병만을 두고 호칭하는 한국의 '베어그릴스'라는 이름의 영국인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베어그릴스 사망"이라는 섬뜩한 연관검색어가 뒤따라 올라온다. 물론 그는 아직까지 건재하게 생존중이지만 이런 연관 검색어가 그의 이름을 뒤따르는 이유중 하나는 많은이들이 그의 생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만큼 그는 인간이 발을 딛기 어려운 극한의 오지를 탐험하며 생명을 위협하는 특수 상황에 (실제로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보편적인 케이스가 인생을 살면서 한번이나 마주하게 될지는 의문이다만)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를 몸소 체험하는 세계 최고의 생존왕이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대체로 군용나이프와 부싯돌 정도가 전부이기에 그는 주어진 최소한의 생존 용품들로 살아 남을수 밖에 없다. 그는 낙타 한마리를 해체하여 몸을 숨기고 추위를 피하는 은신처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사막 한가운데에서 갈증을 해갈할 방법이 없을때 해체된 낙타의 내장속 물을 마시고 심지어 코끼리나 낙타와 같은 동물이 남긴 변을 짜내어 목을 축이는 궁극의 인내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악어의 척수를 끊는 방법으로 사투를 벌이고 네티즌에게 이미 혐오 벌레로 널리 알려진 곱등이를 식사로 즐기는 그의 모습을 볼때면 과연 인간이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때 살아남기 위해서 못할 일이 없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데 사실 이 위대한 생존 드라마는 한 인간의 생존을 대리 체험하는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 오지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학습하는 교본용 테이프라고 보는 것이 더 알맞을 것이다. 그는 일부러 극한의 상황에 처한 자신을 시험하여 본인이 기인임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재연하는 영상을 만들어 내보이는 교육자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부러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베어그릴스 자신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화면을 통해 야생에서 죽은 얼룩말의 생고기를 뜯어먹는 장면을 재연해냈지만 삽시간에 고기가 부패하는 더위 아래서 고기를 날로 뜯어먹는다는 것은 살인 행위나 다를바 없다. 그것은 죽은 말의 모형 위에 스테이크를 얹어 뜯어먹는 장면을 연출해서 내보낸 재연 장면이다. 영상 속에서 대부분의 장면은 베어그릴스가 위험 부담을 껴안고 직접 재현해보이는 실사물이지만 목숨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상황은 어쩔 수 없이 연출해서 내보내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사기극이라 말할 사람이 있을까?
정글의 법칙을 두고 한국의 베어그릴스라 종종 말하곤 한다. 분명 주어진 최소한의 생존 용품들로 기본적인 의식주의 배려도 없이 스스로 사냥을 하여 식량을 해결하고 밤이슬을 피할 집을 만들고 불이 나오지 않는 곳에서 불을 발견하고 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물을 퍼올리는 기적을 강행하는 그들에게 이런 호칭은 아깝지 않다. 새총 하나로 엉켜있는 나무 위의 뱀을 떨어뜨리고 폭발 직전의 불타오르는 화산덩어리를 탐험하며 독가오리와 사투를 벌이고 불빛 하나 없는 컴컴한 밤바다에 몸을 던지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더 리얼하게 해줘 하는 바람 이전에 시청자가 오히려 그들의 안전불감증을 염려해야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나는 베어그릴스와 정글의 법칙은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이 이끌어가는 철학 자체가 다른 방송이라고 여겼다. 베어그릴스는 극한의 상황에서 홀로 남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극단적으로 시험해보이는 고독한 생존게임이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에서 중요시하는 철학은 인간은 결국 혼자 살 수 없다는 화합의 중요성이다. 분명 그들은 생존을 위협 당할 만한 고립된 오지에서 최소한의 생존 용품만을 가지고 극한의 상황을 생존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 언제나 중요시 되었던 결말은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으며 홀로 남는다고 해도 그 생존에는 의미가 없다는 휴머니티한 메시지였다.
그것은 사막에서 물을 퍼올렸던 김병만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다른이에게 역할을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할일을 묵묵히 찾아서하는 고독한 김병만이지만 결국 그의 원동력은 남은 부족원을 먹여 살리기 위한 책임감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생존 자체에는 별다른 의미도 없을 것 같은 고양이 손 같은 위치의 류담이라 해도 그가 김병만의 주변에서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고립된 김병만과 오지의 부족을 엮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며 홀로 남겨진 김병만에게 지속적인 응원을 보내어 그의 정신력을 사그라들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나무위의 코코넛 열매를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따내었던 김병만이지만 그것을 따내게 해주었던 계기도 그리고 그것을 마시는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던 계기도 결국 김병만 주변의 사람 때문이었다. 인간은 결코 홀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을, 그 화합과 협력의 중요성을 나는 오히려 병만족의 생존에서 매번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날의 정글의 법칙은 그동안 가져왔던 나의 이런 소소한 감동과 정글의 법칙이 이끌어왔던 철학을 우습게 생채기 내버리는 세번의 판단 착오를 했다. 그것은 나를 몹시나 실망 시키는 이른바 배반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첫번째. 언제나 우리를 감동시키는 여전사 전혜빈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전사라는 타이틀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의무감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지경이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날카로운 뿔을 희번득대는 생소한 생물체인 '바투' 라는 소의 종류를 이 마을 사람들은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처음 다루는 정글의 법칙 멤버들이 편을 나누어 경쟁을 벌이는 바투 레이스라는 것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겨우 사흘 남짓한 짧막한 기간 동안 다른 여러가지의 일정이 섞여있는 그들은 무리하게 위험한 미션까지 추가시키는 부담스러운 진행을 강행했는데 이에 부담 없이 따라주는 전혜빈의 행동력은 고마울 지경이지만 바투의 뒤에 묶여있는 달구지를 위태위태하게 버티고 섰던 그녀가 결국 무너져 땅에 쳐박히는 모습은 그리 달가운 광경이 아니었다. 순간 촬영은 중단 되었고 모든 식구들이 전혜빈에게 달려와 그녀의 안전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겁이 많다고 생각했던 노우진이 달리는 바투 아래서 풀썩 뛰어내려 전혜빈에게 달려가는 모습은 감동적인 것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주변에서 조심하라고 일렀는데도 괜찮다고 위험한 포즈로 서있다 끝끝내 변을 당한 전혜빈의 무모한 행동력이 다소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글의 법칙에서 전사의 타이틀을 갖고 있는 김병만이나 리키김과 같은 숙련된 멤버들의 경우 분명 어떤 도전이건 꺼림칙하지 않고 받아드는 과감한 행동력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결코 무모한 도전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을 그리고 팀원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위험성을 최소화하려는 사려깊은 조심성이 언제나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혜빈은 유일한 홍일점으로서의 기존 여성 멤버들과 달라야한다는 중압감 때문인 것인지 때론 도전이 안전을 뛰어넘는 순간이 종종 발휘된다. 더욱이 다른 멤버들이 몇번의 충고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안전수칙을 무시한 행동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조금은 침착한 협동심이 필요한 단계라 보여진다.
두번째. 안전수칙을 무시한 것은 전헤빈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바투 레이스라는 위험한 그리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게임을 단순히 화면의 흥미도를 올리기 위해 위험 요소를 추가한다는 사실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었는데 이후 세시가 넘은 시각에 몇키로 거리의 바다로 나가 생선을 잡게 내보낸 제작진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무모한 행동이었다. 이미 출발 시각 즈음에 낚시를 끝내고 돌아오는 배들이 보이는 순간에 도저히 낚시를 떠날 수 있는 시간대가 아니었음에도 현지인도 아닌 낯선 배경의 오지를 보트를 타고 나아가 바다를 건너기를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낙오가 되길 바란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출발드림팀과 무한도전에서 각기 조정의 경험이 있었던 리키김과 진운이 강인한 체력으로 힘껏 노를 저어댔지만 시간은 해를 넘어서 이미 저녁으로 향해가고 있었고 도저히 더 노를 저어 사냥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리키김을 비롯한 스탭들 모두를 포함한 13명은 꼼짝없이 13인의 표류기를 하게 되었는데 돌발상황이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에 앞서 이런 무모한 계획으로 위험 상황을 초래한 그들의 판단 착오가 아쉬울 뿐이었다. 우리야 편안히 티비로 이미 녹화된 영상을 시청하는 미래의 입장이니 안도하며 본다고 하더라도 촬영 당시만 해도 어떤 위험을 초래하게 될지 그들 자신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 아니었는가.
일몰이 지고 사방이 캄캄해진 해변 한가운데 여자와 아이들만 남은 작은 마을에 당도한 그들은 병만팀이 남아서 걱정하게 될 그들의 안전을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고민한다. 무전 통신도 되지 않았고 최악의 상황에서 꺼내든 위성 전화마저 연결 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안전을 위해 함께 따라온 현지인들에게 쪽지를 쥐어주고 통신망으로 쓰기로 하는데 민폐도 이런 민폐가 있을까 싶어 화가 치밀었다. 또 다른 마을의 부족민들이나 정글의 법칙 제작진들 또한 인정한바 바람이 사방으로 몰아치고 파도까지 거센 이날의 날씨는 물고기조차 잡을 수 없는 열악하고 위험한 상태였었다. 그런데 해까지 떨어져버리고 사방이 캄캄해져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바다 위를 아무리 현지인이라고 할지언정 자신들의 연락처로 이용한다는 것은 도를 넘은 무례라고 느껴졌던 것이다. 부탁을 받아든 친절한 현지인들 또한 "갈수는 있지만 돌아올 수는 없다" 고 잘라 말한다.
정글의 법칙에서 그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마지막에는 진한 감동으로 퍼져 나갔던 화합의 미학이 깨뜨려지는 순간이었다. 감동을 만들기 위해 이기주의가 발현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날 정진운은 외딴 섬에 떨어져 자신의 자작곡이라며 기타를 연주했는데 그가 언제나 기타를 즐겨 들고 다닌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멀리 위험한 곳으로 현지인을 떠나보내고 기타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에 "도대체 낚시를 한다더니 기타는 왜 들고간 거야?" 라는 생각이 들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정글의 법칙에 깊은 이해도가 있는 사려깊은 시청자를 제외한다면 조작의 위험을 끄집어 낼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감동적인 화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이 생명을 걸고 고군분투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고마워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또 한편으로 끝까지 지켜졌으면 하는 것이 바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할 안전 수칙의 중요성이다. 과거 파푸아의 밀림을 탐험하던 정글의 법칙팀은 후발주자인 정순영 PD가 길을 잃고 낙오 되어 26시간이나 실종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눈물이 범벅된 김병만이 울먹이며 정글의 나무를 다 베어내서라도 찾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던 그날의 끔찍한 기억을 잊어버렸는가. 결국 현지 부족 100명과 경찰의 도움까지 받아 찾아낸 그날의 충격적인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제작진 자신도 잘 알고있는 사항이 아니던가. "제발 연락 좀 받아주세요..." 들리지 않는 먹통 상태의 무전 통신기를 들고 간절한 목소리로 외치는 스탭의 신호를 듣고 있노라니 어쩐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시청자가 정글의 법칙에서 요구하는 것은 베어그릴스가 아니다. 어디까지 살아남을 수 있나 보자며 팔짱 끼고 그들의 위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없다. 정글의 법칙이 추구했던 화합의 미덕을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규칙한 혼돈의 만용이 아니라 규칙과 질서가 존재하는 협력과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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