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9일.
한국수영의 희망이자 기둥인 박태환이 4년 동안 흘린 땀의 결실을 맺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박태환은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한국 수영 사상 첫 올림픽 메달 쾌거에 전 국민이 환호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금메달 후유증을 톡톡히 치르며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한층 성숙한 박태환은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고 금메달의 감동과 환희를 다시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에는 금메달로 만족할 수 없다. 세계신기록을 작성해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월드클래스의 반열에 오르는 것, 이것이 박태환이 정한 또 다른 목표다.
런던프로젝트 스타트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후 박태환에게는 큰 시련도 있었다. 올림픽을 치른 후 1년뒤 있었던 2009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전 종목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박태환을 찾는 곳이 맞아져 훈련을 소홀히 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었는지, 또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직후라 동기부여가 크지 않았던 탓이었는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국민들은 박태환이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한번 한국수영의 자존심을 세워주길 바랐던 기대가 무너지자 많은 비난들을 퍼부어댔다. 이 굴욕들이 약이 됐을까. 박태환은 몸 상태나 정신상태 모두 ‘제로’의 상태에서 재기에 힘썼다. 박태환 전담팀의 권태현 트레이너가 “2009년 박태환이 실패를 겪고 12월에 만났는데 몸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얘기할 정도로 박태환은 수영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2010년 초 마이클 볼 코치를 전담코치로 정한 후 수영훈련과 함께 근육을 만들고 파워와 지구력을 향상시킨 결과, 박태환은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자유형 100•200•400m)에 오르며 자존심을 회복했다. 박태환이 마이클 볼 코치를 만난 후 스프린터 훈련에 집중한 결과이기도 했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기 위해 근력 향상에 치중했고 그 결과는 2011 상하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1위, 200m 결선에서 1분44초92, 4위라는 기록으로 나왔다. 200m 1위인 라이언 록티의 1분44초44에 불과 0.48초 뒤진 기록이었다.
이후 박태환은 곧바로 올림픽 준비에 착수했다. 지난해 10월부터 호주 브리즈번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4차에 걸친 전지훈련을 시행했으며 6월 9일 프랑스로 건너가 런던에 입성하기까지 조정훈련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전지훈련 사이사이 박태환은 호주나 캐나다에서 열린 지역대회를 통해 훈련성과를 점검하기도 했다. 지난 2월 호주에서 열린 지역 대회에서는 200•400•1500m에서 우승을 차지해 대회 3관왕에 올랐고 자유형 1500m에서는 5년2개월 만에 한국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400m 기록 향상을 위해 꾸준히 지구력 향상 훈련을 한 것이 1500m 한국기록 경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5월말에 캐나다에서 있었던 멜제이젝주니어인터내셔널 수영대회에서는 자유형 200m와 함께 400m에서 3분44초22의 시즌 2위 기록으로 우승하며 대회 2관왕을 차지했다. 이어 열린 미국 산타클라라 대회에서는 자유형 800m와 100m, 400m, 200m까지 출전 전 종목을 휩쓸며 4관왕에 올랐다. 특히 이 대회 200m에서는 초반 100m를 50초99로 끊어 자신의 최고 기록인 51초대를 넘어섰다는 것이 큰 성과였다. 박태환 역시도 대회를 마친 뒤 “100m 랩타임을 50초대에 끊은 것이 가장 큰 성과다. 200m에서는 50초대로 턴을 해야 마이클 펠프스, 라이언 록티와 경쟁할 수 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차근차근 런던프로젝트를 실행해가고 있는 박태환에게 좀더 필요한 것은 ‘스타트와 턴, 그리고 잠영’의 보완이다. 박태환이 50초대의 100m 랩타임 기록과 함께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보완점을 찾아냈다는 것을 미국 산타클라라 대회의 큰 성과로 평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잠영은 박태환이 원하는 세계신기록을 위해서는 꼭 풀어내야 할 과제다. 이를 위해 돌핀킥 훈련은 물론이고 골반유연성, 허리, 하체 근육을 키우기 위한 강도 높은 운동도 병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잠영거리만 길어져서도 안 된다. 스피드가 함께 향상돼야만 기록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박태환은 “무엇보다도 실전에서 실력발휘가 되는 것이 중요하므로 아무 생각 없이 몸이 스스로 반응할 만큼 훈련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박태환 전담팀
런던프로젝트가 차질 없이 이 시점까지 온 데에는 박태환의 노력도 컸겠지만 박태환의 모든 것을 지원해온 ‘박태환 전담팀’의 역할이 무척 컸다. 2010년 1월부터 박태환을 지도한 전담코치 마이클 볼, 같은 시기에 전담팀에 합류한 권태현 체력 트레이너,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박태환의 몸 상태를 보는 것이 자신의 업이 된 박철규 트레이너,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류한 통역 강민규, 또 지원 및 훈련을 총괄하는 권세정 매니저까지 3년여를 박태환의 손이 되고 발이 되며, 박태환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2009년 로마세계선수권대회 이후 박태환으로서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놓여 있을 때 재결성 돼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2011 상하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까지 이들은 함께 했다. 박태환 역시도 전담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운동하는데 지장이 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 같다. 특히 박철규 의무트레이너는 4년 정도를 함께 하다 보니 내 몸을 보기만 해도 어떤 상태인지 알 정도다, 이제는 훈련하는데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2009년 실패 이후 자신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전담팀 덕으로 돌렸다.
‘훈련 파트너’ 이현승의 올림픽 도전기
만약 박태환이 호주와 한국을 넘나들며 훈련을 하는데 큰 힘이 돼준 도우미가 또 한 명 있다. 때론 형처럼, 때론 친구처럼 함께 하며 해외에서의 외로움을 함께 달랬던 박태환의 훈련파트너 이현승이다. 한국수영계의 ‘엄친아’로 불리는 이현승은 지난해 7월 마지막 올림픽 도전을 위해 미국에서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인 방법들이 정해지지 않았을 무렵, 평소에 친한 박태환과의 식사자리에서 같이 훈련하자는 제의를 받고 동반 호주행을 결심했다. 공부와 수영을 병행하느라 한 켠에 접어놓았던 올림픽 출전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서로 얘기도 많이 하고 격려도 많이 했다. 수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호주에서 (박)태환이에게 주말을 이용해 영어를 가르쳐주기로 했지만 서로 피곤해서 그러지 못한게 아쉽다”며 좋은 환경에서 체계적인 프로그램들을 통해 훈련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그 덕분인지 200m 선수였던 이현승은 1500m 기록을 거침없이 단축해나갔다. 한번 나갈 때마다 10초 여를 줄이며 올림픽 출전 가능성을 높였지만 결국 그의 수영선수로서 가졌던 마지막 꿈은 접어야 했다. “1500m를 딱 5번 뛰었다. 그런데 네 번째 대회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느낌이 왔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무조건 일정 기록 이상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라 부담이 컸던지 기록을 단축하지 못해 아쉬웠다” 이현승의 말처럼 감이 왔다던 네 번째 대회가 바로 5월 말 캐나다에서 있었던 멜제이잭 인터내셔널이다. 이 대회에서 이현승은 15분27초41, 자신의 최고기록을 세웠지만 15분11초83의 런던올림픽 A-기준기록에는 못 미쳤다. ‘A기록을 통과한 선수가 없으면 그 종목에는 단 한 명의 선수만 내보낼 수 있다’는 국제수영연맹 규정에 내심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A-기준기록을 넘은 박태환이 1500미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면서 ‘한 종목에 두 명 모두 출전하려면 둘 다 A기록을 넘어야 한다’는 국제수영연맹의 새로운 규정에 따라 이현승의 올림픽 출전도전을 실패로 돌아갔다. 평생 후회 할 것 같아 마지막으로 올림픽에 도전했다는 이현승, 비록 올림픽출전은 실패했지만 언제나 공부와 수영을 병행해왔던 탓에 다른 생각하지 않고 수영에 ‘올인’했던 적이 처음이어서 였던지 그 8개월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학업을 마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고 전해왔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도 없다”는 말과 함께. 이현승의 꿈이기도 했던 올림픽은 그의 수영선수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셈이다.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며
지난 6월 8일, 박태환은 런던 프로젝트의 마지막 훈련지인 프랑스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의 마지막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태환은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런던올림픽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이다.” 은퇴를 얘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 동안 수 차례 밝혔던 세계신기록 작성의 목표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얘기였다. 박태환의 세계신기록을 작성하게 될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 런던올림픽이 됐으면 한다는 소망과, 되게 할 것이라는 각오에 대한 다른 표현이었다. 박태환은 모든 계획을 여기에 맞추고 있다. 그래서 그 동안 보여줬던 독특한 레이스운영을 이번 올림픽에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작전을 구상하든 400미터를 3분40초대 이하로 들어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후반에 스퍼트를 하거나 전반부터 치고 나가는 레이스운영은 세계신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불안정하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100미터부터 정확한 랩타임을 맞춰가며 레이스를 펼칠 예정이며 작전구상을 한다 하더라도 스타트를 한 후에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 많아 여러 가지 변수를 염두에 두고 세밀하게 준비할 예정임을 강조했다.
박태환의 400미터 최고기록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작성한 3분41초53, 올 시즌 최고 기록은 지난달 멜제이잭 인터내셔널에서 기록한 3분44초22로 세계 2위 기록이다. 올 시즌 세계 최고기록은 '박태환 라이벌' 쑨양이 4월 중국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기록한 3분42초31이며 세계기록보유자(3분40초07, 2009년 로마세계선수권)이자 상하이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인 독일의 파울 비더만은 지난 5월 유럽수영선수권에서 3분47초84, 프랑스 에이스 야닉 아넬은 2월 몽펠리에내셔널오픈대회에서 3분47초80으로 저조했다. 박태환은 경쟁자들의 정보를 예의주시하며 자신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박태환 전담팀에 따르면 지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베이징올림픽때와 같은 수준의 몸 상태를 만들어놨고, 그 이후 근력 수준을 더 올려 지난해 상하이세계선수권에서는 광저우 때보다 5~10%, 현재는 그보다 5~7% 정도 증가해 근력수준은 최대치까지 올라간 상태라고 밝혔다. 프랑스에서 지구력을 최대치로 올린 후 경기 열흘전에 훈련을 중단해 경기당일 최상의 컨디션을 만드는 조정훈련을 갖게 되고, 그 후 7월21일 런던에 입성해 올림픽 2연패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한국시간 2012년 7월29일, 박태환은 런던 올림픽파크내 아쿠아틱 센터에서 자유형 400m 출발대에 선다. 그리고 3분여가 지날 즈음 우리는 어쩌면 대한민국 수영의 새로운 역사를 맞이 할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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