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에게 협박성 트위터 글이 올라와 공개했느데, 좀 심하네요. 고인이 된 신해철씨까지 거론하면서 글을 올렸는데, 내용이 반국가선동에 섰던 종북가수 신해철이 비참하게 불귀의 객이 되었다니요. 이건 고소해야 되는거 아닌가?? 정말 더럽네 누가 종북인지 모르겠네~ 


이승환 협박성 트위터글 공개 “반국가 선동의 선봉에 섰던 종북 가수” 

국정화 반대 콘서트를 열기로한 가수 이승환이 협박성 내용이 담긴 트위터 글을 공개했다. 


이승환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누군가가 이승환을 겨냥해 올린 트위터 글을 공개했다.

이 글 에는 “반국가 선동의 선봉에 섰던 종북 가수 신해철이 비참하게 불귀의 객이 됐다. 다음은 빨갱이 가수 이승환 차례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한편, 이승환 소속사 드림팩토리 측은 “4일 오후 7시 홍대 롤링홀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승환과 뜻을 같이하는 뮤지션들이 모여 무료 공연 ‘한쪽 눈을 가리지 마세요’를 펼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어 “15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과 청소년들만을 위한 공연이다. 나이 제한이 있으므로 학생증이나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해당 나이에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연장 입구에 세워놓은 화이트보드에 자신만의 생각을 적고 무료 입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연에는 이승환 밴드를 비롯해 피아, 십센치, 가리온, 데이브레이크, 로큰롤라디오, 타틀즈 등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환과 함께 자선재단 ‘차카게 살자’ 발기인으로 나선 강풀 작가와 주진우 ‘시사인’ 기자도 함께할 예정이다.



Posted by Mr크리스티앙 :

김제동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1인시위를 하고 있다네요. 역시 제동이형 할말은 하고 삽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에 따른 시위들이 많아지는데,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데 시행하는 대통령은 도대체 무슨생각인 건가요?? 국정화 찬성하는 사람들 주위에서 본적이 없네요. 그런데 어버이 연합에 나가시는 분들은 어디서 출몰하시는 건가요? 그 모습을 자식들이 본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교과서 국정화 확정 김제동 1인 시위

방송인 김제동이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 뜻으로 1인 시위에 나서 눈길을 끈다.

3일 페이스북에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문구가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김제동의 모습이 게재됐다.

게재된 사진 속에는 김제동이 "역사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마음까지 국정화하시겠습니까? 쉽지 않으실 겁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한편 이날 정부는 오는 2017년부터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을 확정 고시해 논란을 야기시켰다.



Posted by Mr크리스티앙 :

안녕하세요. 경우입니다. 가슴이 답답하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몇 마디 적겠습니다. 
아무래도 전공자 입장에서 다소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라 내용이 '꽤' 길어질 수도 있으니 이점은 미리 양해부탁드리겠습니다.  


12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실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금요일에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규탄 및 철회에 대한 공동성명에 참여해주십사 하는 글을 올렸었습니다. 
(http://cafe.daum.net/ilovenba/34Xk/270409)


말씀드렸던대로 그 친구들은 월요일에 광화문에서 1,991명의 여러 학생, 시민분들의 서명을 받은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그 자리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시위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http://www.hankookilbo.com/v/ecebf73b7ea54fd49786ab8312377352)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가슴이 답답하고 뭐라 할 말이 없어 담배를 많이 폈습니다. 그 친구가 페이스북에서 제게 공동성명을 제안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서명을 제안하는 일밖에는 제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것부터 지금까지도 제가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하지도 않고 있다는 점이 그 친구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수업이 있어 연구실에 계속 앉아 수업 관련 연구들을 뒤적뒤적 하다가 누군가 연구실에 가져다놓은 신문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그 신문은 중앙일보였는데 그 신문을 가져다 놨을 그 누군가는 우리 모두에게 한 번 보라는듯 1면을 연구실 테이블에 펼쳐놨더군요. 잠시 일어나 물을 마시려다가 뭐라고 써놨을지 궁금하여 후회할 걸 알면서도 이리저리 넘겨가며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감정이 아무래도 가라앉지를 않아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네요. 요즈음 일이 많아 보게 되면 이렇게 될 것 같아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데.. 

하.. 그 기사 하나하나를 읽을때마다 끌어오르는 분노란. 대체 이것들은 아니 이새끼들은 역사를 대체 뭐로 보는건가? 


언급하기도 민망한 내용들이지만, 기억나는 기사를 다시 찾아보니 다음 기사네요. 

- 교과서에 숨은 편향 ... 박정희 사진 1장, DJ 4장, 김일성 3장 
(http://news.joins.com/article/18844676) 

내용을 읽어보시면, 그 지적하는 것들이 참으로 한심하고 분통터지는 것들뿐입니다. 
기사 내용 중 나오는 몇 가지만 언급해볼까요?

금성 :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인 자세도 국민이 등을 돌리는 한 원인... 민주적 권리에 대한 요구를 탄압
-> 잘못에 대한 서술 많아
금성 : 인민위원회는... 농민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으로 토지개혁 실시
-> 북한 토지분배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할 소지 

두산동아 : 이승만은 귀국 후 친일세력들에게 많은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이었다. 
-> 잘못에 대한 서술 많아
두산동아 : 북한은 남한 총선거 실시되자 곧바로 정부 수립... 사회주의국들이 승인
-> 북한을 남한과 동등한 정부 수립으로 인식

천재교육 : 1946년 3월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 북한 토지분배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할 소지

짚어보면, 이들이 중점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들은 이승만에 대한 비판/북한에 대한 긍정적 서술 부분입니다.
사실상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박정희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크게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겠지요. 그리고 그 이전 일제시대 부분 같은 경우, 기존 교과서들이 철저하게 일본 제국주의/식민지 비판에 입각해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이 테클을 걸 부분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쓰고 싶은대로 썼을 때 문제가 생기겠지만, 교학사 교과서 때 그랬듯이 친일에 관해서는 그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때쯤인가요? 정부와 뉴라이트, 수구 언론에서 검인정 교과서들에서 유관순을 누락시켰다고 '종북' '친일' 교과서라고 비판해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지요? 이에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한 번 알럽에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관련해서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다음 링크를 확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http://cafe.daum.net/ilovenba/34Xk/250852)

이때 제가 썼던 내용은 간단히 말해, 그들이 지적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맥락에서, 오히려 해방 직후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행적을 정당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찾아낸 것이 유관순이었고 유관순에 대한 2009년 학계에서 발표된 성과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연구란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된다면, 그렇다면 그 유관순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에 대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글에 달린 키드가되고싶어요님의 댓글도 함께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들이 하고자 했던 작업은 결국 기존 교과서들을 종북적인 입장에서 쓰인, 좌익 사상에 편향된 교과서라는 프레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본다면, 그 작업은 이미 2009년 대안교과서부터 치밀하면서도 꾸준하고 일관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존의 교과서를 좌우 대립, 아니 대한민국과 종북세력의 대립으로 재단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좌우 이념에서 자유로운 '중립적이며' 그렇기에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올바른' 교과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이 앞에 제가 기사에서 가져왔던 그들이 지적하고 있는 기존 교과서들의 문제들이 의미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들이 이야기하는 '올바른'이란 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대체 무엇인가? 

여기서 좀 길지만,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보통 역사학개론에서 이야기하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1) 과거에 대한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서 2) 과거의 사실들을 통해 교훈을 얻기 위해서 3) 정체성에 대한 문제, 즉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근대 역사학이 하고 있는 작업들은 바로 3) 지금 내가 발담고 있는 현재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모든 시대를 다루고 있는 연구들도 그렇겠지만 특히나 동시대에 대한 연구, 즉 근현대사 연구는 대개 여기에서 출발하기 마련입니다. 지금 현실 문제의 기원은 어디이며 그것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분과적인 이야기로 흘렀지만,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나라 근현대사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서입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일제시대에는 근현대사 연구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할 수도 없었고 이야기하려 하는 사람도 식민지라는 당시 상황 속에서 당대사가 아니라 그 이전의 통사를 다뤘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근현대사 연구가 시작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회경제사가들이 대거 납북되었고 6.25전쟁 발발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의 반공을 앞세운 독재 통치 아래에서 역사학계의 역량은 어떻게 그 시대를 다뤄야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1960년 중반 무렵에서야 연구들이 축적되기 시작했는데, 조선후기의 자본주의의 맹아를 이야기하면서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들과 일제시대를 식민지 수탈론의 관점에서 정리하는 연구들이 등장한 것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해방 이후에 대해서는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이야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25전쟁 이전까지의 역사에서 특히나 독립운동과 국가 수립, 6.25전쟁은 공산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죠. 누가 더 독립에 공이 많았느냐, 뭐 이런 일차원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분명히 이 땅에 존재했고 적지 않은 역할들을 수행했다는 것은 분명하며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들이 활동했던 해방공간과 이승만정권의 친일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날이 강해지는 반공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무리 학계라고 할지라도 이를 감히 다루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막 독립한 국가의 역사학계가 가진 역량적인 한계도 무시할 수없음은 물론이구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혀 이야기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식적인 역사가 아니라, 과장을 조금 보태, 저항자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다루었던 것은 역사학계가 아니라, 당시 정권에 저항하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특히 근현대사에 대한 탐구가 지금 현실 문제의 기원은 어디이며 그것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데서 출발한다고 했었던 것도 이와 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억압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이들은 그들이 디딘 현실 문제의 기원을 찾고 그를 통해 정권에 대한 저항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이 역사로부터 찾았던 것은 식민지 유산의 청산 그리고 대한민국에 집권해왔던 정부들의 친일문제였던 것이죠. 해방 이후 우리는 식민지 문제를 청산하지 못했고 친일파들은 그대로 정권에 참여했고 득세했으며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 드디어 역사학계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연구가 등장합니다.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연구는 출간 즉시 금서가 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돌려읽혀지면서 소위 운동권의 필독서가 됩니다. 통일지향적 역사인식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반공적인 분위기에서 우익 계열만을 다루었던 그동안의 역사 연구를 비판하며 좌익 계열 역시 함께 해방운동의 한 날개로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방운동의 한 축으로서 좌익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그것이 역사학에서 함께 다루어져야만 한다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는데, 이 연구는 비록 일제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반공을 통해 독재를 자행하는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이러한 문제의식을 포함하여 나온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연구가, 역시 금서가 되긴 했지만, 1978년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란 책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역사 속에서 분명히 존재했던 좌익운동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으로까지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반공주의 비판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었던 셈입니다. 결국 이는 해방 이후 식민지 유산에 대한 청산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반공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진행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지게 되었단 것, 정권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적 토양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1980년대 들어서 이러한 흐름은 당연히 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특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일부에서는 더욱 급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것은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을 '국사'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 혹시 들어보셨나요? 대학교에 들어가서 '나쁜' 선배들과 이야기하면서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던 80년대 학번들의 이야기들. (하지만 검인정 세대였던 저 역시도 이러한 경험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국가는 그 역사에 대해서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지만,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저항운동세력 안에서는 이미 내부적으로 깊이 공유하는 '또다른' 역사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그리고 '광주'는 독재 정권에 저항하게 만드는 거대한 동력으로 작동했습니다. 왜 그들이 '나쁘며' 왜 우리의 저항이 '당위적이고 선한' 것인지를 '또다른' 근현대사가 보여주었던 것이죠. (저는 이러한 역사인식에 비판적이지만, 글과는 상관없으니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민주화 이후, 드디어 이 '또다른' 역사가 기존의 '국사'를 대신하여 공식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승리'라고 할까요?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5.18광주사태'가 아니라, '5.18광주민주화항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또다른' 역사가 승리한 순간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면 너무 나간걸까요? 그러나 학계에서 식민지 공간에서의 좌익 운동, 해방 공간의 좌우 갈등에 대한 연구들이 90년대를 전후해 쏟아져나오게 되었다는 사실로 봤을 때도, 그것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제가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근현대사를 둘러싼 역사전쟁은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역사와 함께 진행되었으며 이는 동시에 저항의 원천이었다는 것입니다. 지하에서만 이야기되었던 그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이야기되고 그것이 기존의 국가주의적, 반공주의적인 근현대사를 점차 대체해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물론 이 과정이 쉬이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 입장에 따라 갑론을박은 당시에도 여전히 존재했고 역사학계 내에서도 '또다른' 역사의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네, 정말 한참을 돌아왔지만, 다시 교과서 문제로 돌아가볼까요?


국정교과서 체제에서 근현대사 파트가 떨어져나온 것은 2000년대의 일입니다. 아마 제 언저리부터가 근현대사를 검인정 체제로 배웠던 세대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연도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아마도 2002년이었다고 기억되네요. 이후 그 체제가 유지되다가 그것이 다시 한국사로 통합된건 엠비 때라 생각됩니다. 그건 아마도 2009년 무렵이었던 것 같구요. 그 시점에서 뉴라이트 세력이 만든 기파랑 대안교과서가 논란이 되었을텐데 그 문제로 친구들과 세미나를 했던게 아마 그때쯤이라고 기억됩니다.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논쟁이 시작된 것도 바로 이 시점입니다.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10년의 민주당 정권의 집권을 거쳐 다시 한나라당이 집권한 시점부터 다시 시작된 셈이죠. 그리고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께서 이 통합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지시하시게 됩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건 결국 교과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파트는 근현대사 파트이며 정권의 입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점입니다. 


왜 그렇게 그들이 여기에 목매고 있는 걸까요? 사회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역사교육이 정말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여서일까요? 정말 검인정 한국사교과서들이 종북세력에 의한 편향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일까요?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인정 체제로 국사에서 떨어져나왔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그것이 절대 집필진의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편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미 목차/장/절의 구성과 그 안에서 담고 있어야 하는 내용들을 국가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정해두고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교과서는 검인정에서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국가의 짜여진 가이드라인 안에서 만들어진 교과서들이 북한을 찬양한다거나 국가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내용을 담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럴 정도의 자의성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아니면 혹시 민주당 정권 하에서 만들어진 검인정체제이기 때문에? 그것 역시 얼토당토않은 말이죠. DJ정권도 노무현정권도 기본적으로 수구보다 더 포용력이 있고 사고가 좀 더 자유로웠을 뿐, 좌파 정권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습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구요. 다만, 분명하게도, '또다른' 역사의 내용이 학계의 논의를 거쳐 교과서에서 이야기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존보다 폭넓게 반영되는 부분이 있게 되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정리한다면, 민주화 이후 십여년이 지나 근현대사 파트가 한국사에서 떨어져나왔고 여기에는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과 함께 형성된 역사인식이 반영되었습니다. 하지만 언급한 것처럼, 그리고 아마 검인정 교과서로 공부하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오히려 그것은 지금 집권세력의 지적과는 달리,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한 서술에서 전혀 벗어나있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식민지와 독재란 시련을 겪었음에도 어떻게 대한민국이 민주화와 함께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는지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쓰여져있지 않던가요? 그리고 사실 더 솔직하게 말해 근현대사 파트는 진도상 박정희 정권 이후로는 잘 다루지도 않고 자세하지도 않습니다. 또 부끄럽지만 역사학계의 성과도 이제서야 겨우 70년대를 다루기 시작하는 단계라서.. (....) 그러나, 그럼에도 이것이 갖는 함의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비록 교과서에 겨우 반영되었을 뿐이지만, 거기에는 그 긴 세월 제국주의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냉전분단체제의 모순 속에서도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무게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무게는, 정말이지, 결코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 새벽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 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라는 것이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이 현재의 근현대사 교과서 서술에 내리는 몇 마디 말로 내리는 평가라는 것들이, 그 '비판'이 얼마나 몰염치하며 폭력적인 짓거리인지 말입니다. 결국 그들은 역사 교육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역사교과서의 내용 그 자체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역사교과서는 그저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대대적인 논란을 만들어가며 그들이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이것이 갖는 효과를 노리고 있는거죠. 즉 이들에게 근현대사 교과서의 '올바른' 서술이란, 단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를 사회에 강제하며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동안 줄기차게 저항세력들을 중심으로 공유해왔던 근현대사를 통한 기득권에 대한 비판, 이제 그만 두어라, 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시대, 너희들이 그토록 외쳤던 저항의 시대는 끝났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라." 


결국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올바른', 이란 그런 의미입니다. 이것이 곧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회통합의 방식인 셈입니다. 전 어떻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인 분열을 막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가가 규정한 내용으로 역사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쉽게 나오는지 신기합니다. 아마도 그게 그들의 마인드겠죠. 국가가 갖고 있는 내부의 모순이 더 이상 가릴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지고 있으나, 기득권이 그리고 국가가 그것을 강제적으로 봉합하며 문제를 덮고자 할 때 늘상 등장하는 해결방식. 1974년 유신체제 당시의 국정교과서가 그랬고 지금의 아베정권이 그렇듯이 박근혜 정권도 똑같이 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결국 그대로 관철되었을 때, 여전히 정권에 대한 저항은 존재할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1987년 그 기나긴 투쟁을 통해 얻어낸 '승리'가 가지고 있었던 상징적인 의미가, 눈에 보이는 좌절감 속에서 후퇴하게 될 것이란 점 역시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이상(Ideal)을 위한 저항을 가능케 했던 '또다른' 역사가 종북적인 편향을 가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었다는 그들의 폭력적인 프레임 속에 갇힘으로써 그것이 가지고 있었을 수많은 역사적 가능성들의 의미가 부정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이자 죽기 직전까지 보편적 이상을 위한 사회운동에 힘썼던 고 스테판 에셀이 그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프랑스 사회에 던졌던 한 마디를 전하며 긴 글 마치겠습니다.




"분노하라!"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소 따분할 수 있는 내용의 긴 글 읽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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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제 입장을 밝히자면, 사실 저 역시도 전공자로서 근현대사를 서술해온 기존의 관점에는 비판적이며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는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진 무수한 근대 역사학의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말입니다. 또한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서술에서도 벗어나 그간 역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많은 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작업은 이전의 근현대사가 갖는 무게를 인정하면서 진행되어야 하며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이념에 의해 진행되는 것에는 결단코 반대합니다.  


덧2. 다소 논쟁적일 수 있으니 다른 의견있으시면 제기해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한 피드백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내일 오전에 또 발표가 있어서... 다소 늦을 수도... 이것도 너무 길어졌네요. 거의 레포트 수준인ㄷ.. (....)



Posted by Mr크리스티앙 :

드디어 싸이가 컴백합니다. 강제로 해외 진출했던 싸이가 국내로 돌아오는건가요?? 너무 기대됩니다. 싸이는 초심으로 돌아가 비급 음악으로 대중들과 즐길 수 있을겁니다. 2 8개월 만의 음악 기대됩니다. 음학이 아닌 음악을 아는 가수 싸이~ 돌아오시오~ 공연티켓 예약할 테니~

싸이 12 1일 컴백,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싸이가 12 1일 드디어 새 앨범으로 돌아온다.

YG엔터테인먼트는 3일 오전 9시 공식블로그를 통해 싸이 특유의 익살스런 이미지를 잘 살려낸 캐리커쳐와 함께 ‘PSY NEW ALBUM 2015. 12. 01’라고 컴백 날짜를 공개한 포스터를 게재했다.



싸이가 새 앨범을 발표하는 것은 2012 7 15강남스타일이 수록된 '싸이 6' 이후 3 5개월 만이다. 또 국내에서 신곡을 발표하는 것은 2013 4 12일 공개한젠틀맨이후 2 8개월만이다.

싸이는 지난해 연말 콘서트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새 앨범으로 돌아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싸이의 새 앨범에 대한 누리꾼들의 관심이 뜨겁다. 

YG엔터테인먼트는 3일 오전 9시 공식블로그(www.yg-life.com)를 통해 싸이 특유의 익살스런 이미지를 잘 살려낸 캐리커쳐와 함께 ‘PSY NEW ALBUM 2015. 12. 01’라고 컴백 날짜를 공개한 포스터를 게재하며 싸이의 컴백을 알렸다. 

싸이가 새 앨범을 발표하는 것은 2012 7 15강남스타일이 수록된 '싸이 6' 이후 3 5개월 만이다. 또 국내에서 신곡을 발표하는 것은 2013 4 12일 공개한젠틀맨이후 2 8개월만이다.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7주 연속 2, 유튜브 조회수 24 4330만뷰를 넘어서며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등 한국 가요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강남스타일에 이어 역시 빌보드 싱글차트 5, 유튜브 조회수 8 8900만뷰를 돌파한젠틀맨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연이은 히트행진을 이어간 싸이는 지난해 연말 콘서트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새 앨범으로 돌아오겠다"고 선언해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당시 팬들과의 약속대로 새 앨범으로 컴백하게 됐다.



Posted by Mr크리스티앙 :

가수 서지영이 아기와 함께 행복한 일상들이 공개되었는데, 예전 전성기때 참 좋아했던 가수였는데, 이지혜와의 불화 이유 조금 비호감으로 바뀌었던거 같아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서지영씨가 이지혜씨를 주로 괴롭히는 모습이였다고 했느데, 정확한건 둘만이 아는거죠~ 요즘에는 둘이 화해해서 수영장도 가고 그러던데, 지금와서 언플 하는건 아닌듯 하고 진짜 화해 했을거 같아요 서지영도 애기가 있으니 착해지는 거겠죠?

가수 서지영이 근황을 공개한 가운데, 그의 섹시 몸매가 눈길을 모읍니다.

서지영은 최근 인스타그램에 "윤경이가 많이 찍어줬지만 하나같이 다 못생기게 나옴"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공개했습니다.



사진 속 서지영은 또렷한 이목구비를 과시하며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특히 어깨와 가슴골을 훤히 드러내고 있어 남성팬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2일 서지영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제 잘 준비. 항상 꼬모 재우며 나도 꿈나라! 새나라의 어린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서지영이 수수한 민낯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고 뒤에는 서지영의 딸이 인형을 안고 앉아있다. 서지영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도 매끈한 피부와 청순한 매력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한편 서지영은 지난 2011년 금융계에 종사하는 일반인과 결혼해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서지영은 지난달 2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누워서 #배먹기 내껀데.."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 서지영은 딸과 함께 누워 미소를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특히 서지영은 딸이 손에 쥐고 있는 배를 빼앗아 먹는 듯한 포즈를 취했고 딸은 이를 무표정하게 바라봐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한편 서지영은 지난 2011 11월 금융계에 종사하는 회사원과 결혼해 지난해 5월 딸을 출산했다.

그룹 샵(S#arp) 출신 가수 서지영이 딸과 찍은 사진을 공개해 화제인 가운데 가수 이지혜와 찍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이지혜는 과거 자신의 SNS를 통해 심경을 밝힌 바 있다.

이지혜는 '10여 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한때의 큰 사건은 이제 시간이 흘러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고, 돌아보니 소중한 인연들을 놓치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철없이 사고친 저와 제 동생 지영이는 이제 서로의 소중함과 감사함 그리고 진심 어린 화해를 통해 사랑을 배워가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시간 속에서 저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저를 응원해주시고 끝까지 격려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해보겠습니다. 진짜를 노래해보겠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라며 글을 맺었다.

특히 이지혜는 서지영과 비키니를 입은 채 다정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두 사람은 과거 불화설로 인해 세간을 주목을 받았던 것과 달리 친자매 못지않은 다정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Posted by Mr크리스티앙 :

일본 대만에서 하는 프리미어12 한국시간으로 일정 정리했습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일시 (한국기준) 경기
2015.11.08(일) 19:00 일본vs대한민국의 경기
2015.11.11(수) 18:00 도미니카 공화국vs대한민국의 경기
2015.11.12(목) 12:00 대한민국vs베네수엘라의 경기
2015.11.14(토) 18:00 멕시코vs대한민국의 경기
2015.11.15(일) 18:00 대한민국vs미국의 경기



Posted by Mr크리스티앙 :

강민호가 드디어 결혼을 하네요. 신부는 기상캐스터 신소연씨 참 곱기도 하지요. 이번에 장성우 파문의 피해자라고 한다면 강민호의 예비신부 신소연씨가 아닐까 합니다. 이병헌 불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김민정 인 것 처럼 자기 남자의 과거가 모든 사람들에게 폭로된 기분은 어떨까요? 그래도 인터뷰도 하고 잘 이겨나가는 것으로 보아 잘 살 것 같네요. 이런일이 없었으면 모를까 일어일 버린 것 더욱 서로를 아끼면 행복하게 살아야 겠죠?? 장성우는 징계를 좀 먹었던데, 앞으로 그런 사항을 보고 선수들 조심했으면 하네요. 학교에서 인성을 먼저 배워야지요~ 강민도 안정된 가정도 생겼으니, 롯데의 안방마님으로 내년시즌 기대해 봅니다. 못하면 신소연씨 욕먹어요~ 그러니 잘해야 겠죠??

 


10 20일 부산 꽃잠한복은 오는 12월 결혼식을 올리는 롯데 자이언츠 포수 강민호와 신소연 기상 캐스터 한복 화보를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 속 강민호는와 신소연은 한복을 곱게 입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곧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될 두 사람의 모습에서 행복한 기분을 엿볼수 있다.

 

강민호는 지난 2012 8월 시구를 위해 부산 사직구장을 찾은 신소연에게 먼저 호감을 표했고 이후 강민호와 신소연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당시 강민호는 구단을 통해예쁘게 잘 만나겠다. 각자의 위치에서 일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더욱 책임감을 갖고 야구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두 사람은 12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롯데 안방마님 강민호(30)가 올 겨울 품절남 대열에 합류한다.

 

'부산 사나이' 강민호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은 전 SBS 기상캐스터 신소연이다. 둘의 첫 만남은 지난 2012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롯데 팬인 신소연이 부산 사직구장에서 시구자로 나섰고, 이날 포수로 출장한 강민호가 직접 공을 받았다. 둘이 다시 만나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친구로 시작해 연인이 됐고, 2년간의 달콤한 연애 기간을 거쳐 오는 12 5일 부부가 된다. 일간스포츠는 지난 10월 부산에서 결혼 준비가 한창인 강민호-신소연 커플을 만났다. 강민호-신소연 커플은 2년 반 동안의 알콩달콩한 연애이야기를 들려줬다.

 

- 시구가 첫 만남이었다.

신소연(이하 신)="배성재 아나운서(SBS)가 시구를 제의했는데, 처음 연락이 온 구단은 롯데가 아니었다. 나는 원래 롯데 팬이라 사직구장에서 하고 싶었다. 이후 롯데와 연락이 닿아 시구를 하게 됐다. 2012 8월이었다."

 

- 첫 인상은 어땠나.

강민호(이하 강)="시구 당시 기억은 나지 않는다(웃음). 사실 시구자의 공을 받을 때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경기를 앞두고 있어서 상대를 어떻게 막을까 고민한다."

="나도 시구 때 기억은 크게 없다. 시구에 너무 정신없었다(웃음)."

 

- 시구 이후 다시 만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구를 하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오빠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친구 신청을 했다. 내 사진에 '좋아요'를 자주 누르더라. 댓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쪽지를 서로 보내기도 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서로 친구처럼 지내다 '밥이나 한 번 먹자'고 했다. '알았다'고 답이 오길래 서울 원정 때 약속을 잡았다. 그게 2013년 여름이었으니까 시구하고 1년 만에 처음 밥을 먹었다."

 

- 1년 만에 다시 만난 서로의 인상은.

="편견을 가지고 만났다. '운동 선수는 논다' 이미지를 지울 수 없었다. 그냥 인기 많은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는데 잘 웃지 않았다. 매우 도도한 모습이었다. '나한테 콧대 세우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밥을 먹고 난 뒤 이야기를 나누는데 괜찮았다. 내가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됐다. 소박하고, 도시 여자 같지 않은 모습에 끌렸다. 평소 내 이상형이었다. 이후 몇 차례 더 만났고, 정식 교제를 시작한 것이 2013 10월이었다."

 

-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돼 얘기가 돌았다.

="맞다. 2013년 겨울 부산에 있는데, 소연이가 '엄마랑 서면 백화점에 있다'고 하더라. 어머니께 인사드리려고 무작정 찾아갔다. 사람들이 많았는데, 커피숍에서 어머니께 90도 인사를 드렸다(웃음)."

="어머니가 듬직하고, 인상이 좋아보인다고 칭찬하셨다. 그런데 오빠 덩치를 보더니 '생각보다 몸이 크지 않다'고 하셨다. 형부의 키가 191cm나 된다. 오빠보다 더 큰 덩치를 자주 봐서 크다는 느낌을 못받았다고 하셨다. '말하는 게 착하고 바르게 자란 것 같다'며 마음에 들어하셨다."

 

- 강민호의 부모님께는 언제 인사드렸나.

="작년 올스타 휴식기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제주도에 갔다. 부모님이 소연이를 너무 보고 싶어하셨다. 부모님은 평소 내가 어떤 여자를 만날 지 걱정을 많이 하셨다. 인성 바른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소연이를 보시더니 '복스럽게 생겼다'고 좋아하셨다(웃음)."

="어머니가 방송을 보실 때마다 연락을 많이 주셨다. 야외에서 방송을 하면 '힘들지 않았냐'며 걱정도 해주셨다. 너무 감사하다."

 

- 결혼 승낙은 언제 받았는지.

="우리 부모님은 처음 보신 뒤 바로 결혼 승낙을 하셨다. 그리고 작년 겨울 소연이 부모님께 허락을 받으러 갔다. 아버님을 처음 뵌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 딸 가진 부모는 다 같은 심정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운동선수라고 하니까 더 걱정 하셨다."

="장인께서 스포츠 마니아 못지 않으시다. 나보다 메이저리그 선수를 더 많이 알고 계신다. TV 중계를 꼭 챙겨보신다고 하더라. 야구 뿐만 아니라 농구·배구·축구 모든 종목을 좋아하신다."

 

- 상견례는 마쳤는지.

="올해 3월에 했다. 스프링캠프 다녀와서 바로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했다. 시즌이 시작되면 바빠서 여유가 없을 것 같았다. 소연이가 결혼 준비를 혼자 거의 다 했다. 시즌이 끝난 뒤부터 많이 도와주고 있다."

 

'부산 사나이' 강민호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은 전 SBS 기상캐스터 신소연이다. 둘의 첫 만남은 지난 2012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롯데 팬인 신소연이 부산 사직구장에서 시구자로 나섰고, 이날 포수로 출장한 강민호가 직접 공을 받았다. 둘이 다시 만나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친구로 시작해 연인이 됐고, 2년간의 달콤한 연애 기간을 거쳐 오는 12 5일 부부가 된다. 일간스포츠는 지난 10월 부산에서 결혼 준비가 한창인 강민호-신소연 커플을 만났다. 강민호-신소연 커플은 2년 반 동안의 알콩달콩한 연애이야기를 들려줬다.

 

- 지난해까지 성적이 매우 좋지 않았다.

="2년 동안 정말 힘들었다. 소연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줘서 극복할 수 있었다. 불미스러운 사건 때는 정말 미안했다."

="오빠가 그라운드에 물병을 던진 날 야구장에 있었다. 경기 끝나고 만나 '누가 물병을 던졌어'라고 하니 '내가 그랬다. 던지려고 던진 게 아닌데 그렇게 됐다'며 면목없어 하더라. 처음에는 놀랐지만, 오빠가 그런 행동을 한 건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경기에 너무 몰입하다 나도 모르게 실수했다. 그런 잘못을 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너무 간절한 나머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 올해 여자친구가 올 때 유독 홈런을 많이 쳤는데.

="소연이가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더 열심히 한 것 같다. 올해 홈런을 치면 아두치가 만든 늑대 세리머니를 했는데, 가장 먼저 소연이에게 세리머니를 했다. 꽤 많이 한 것 같다."

 

- 시즌을 앞두고 준비를 많이 했나.

="지난 2년간 너무 부진했다. 장종훈 코치님을 따라서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그래서 데이트를 많이 하지 못했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챙겨준 것을 제외하고는 훈련만 했다."

="쉬는 날 아침에 서울에 올라와서 저녁 먹고 내려가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저녁을 먹지 않고 일찍 내려갔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섭섭했는데 이해를 했다. 좋은 결과를 얻어서 기쁘다."

 

- 개인 성적과 팀 성적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타격 성적은 만족한다. 그러나 수비는 부진했다. 지난 겨울 파워를 늘리기 위해 몸을 불렸는데, 무릎과 햄스트링에 무리가 생기더라. 무릎이 아프다보니 수비 폭이 많이 제한됐다. 올 겨울에는 파워와 유연성을 같이 보강하는 훈련을 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팀이 가을야구를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야구는 참 신기하다. 마음을 비우자 6연승을 했고, 신경이 쓰이니까 연패에 빠졌다. 참 아쉽다."

="오빠를 만난 뒤 롯데 경기를 매번 마음 졸이면서 봤다. 나도 마지막까지 응원을 했는데, 와일드카드에 떨어지니 속상했다."

 

- 야구 선수 아내 중 친한 사람이 있나.

="친한 지인 가운데 야구와 관계된 사람은 없다. 야구 쪽 인맥은 아예 없었다."

 

- 방송인에서 야구 선수의 아내가 되는데.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생각하던 목표와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는 생각에 불안감도 있었다. 나는 방송인으로 남고 싶었다. 방송을 쭉 하면서 자리잡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결혼이 빨리 찾아왔고, 다른 길을 가게 됐다."

 

- 언제 결혼을 결심했나.

="어느 순간 '결혼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다. 오빠를 만나면서 조금씩 믿음이 생겼다. 오빠가 항상 긍정적이지만, 힘들고 바닥까지 가면 어떻게 변할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오빠는 정말 힘들었고, 바닥까지 갔는데 나를 대하는 모습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은 평생 함께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이 선 날은 있다. 오빠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제대로 웃지를 않더라. 억지 웃음을 짓는데 힘들어 보였다. 지난해 한 경기에서 삼진 4개를 당한 날이었다. 너무 힘든 상황에서 나에게 웃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러면서 마음이 와닿았다."

 

- 2년 반을 교제하면서 다툼은 없었는지.

="다른 커플과 다르지 않다. 투닥투닥하면서 지낸다. 그러나 야구 하는데 아무런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소연이가 새벽 방송을 하다보니 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내가 걱정할 일이 없었다(웃음)."

="오빠와 생활 사이클이 달라서 조금 힘들었다. 나는 일찍 자야하는데, 오빠는 경기 끝나면 밤 늦은 시간이 되니까. 이제는 적응이 됐다(웃음)."

 

- 2월에서야 교제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다.

="야구 쪽 관계자들은 알고 있지만, 보도를 참아주셨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친구에게 '기사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 이름이 검색어에 오르고, 난리가 났더라. 8월에 일을 그만 둘 때 방송에 알려지면서 연락 많이 받았다."

- 롯데 팬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SNS에서 팬들이 댓글로 격려해 주신다. 신기하면서 책임감이 들었다."

="소연이가 알아서 잘 한다. 팀 성적이 좋지 않으면 SNS를 자제하고, 내가 경기할 시간은 피한다. 시즌 막판에는 경기장에 오지 못하게 했다.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카메라에 잡히고 노출이 된다. 부담스러울 수 있다. 올해는 잘했고 칭찬을 받았지만, 나는 성적에 일희일비 할 수 밖에 없다. 여자친구까지 비난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인터뷰 역시 조심스럽다. 정말 축하해주고, 박수 쳐주는 분이 있는 반면 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공개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소연이는 항상 자기 일만 해왔다. 무심코 듣는 한 마디에 상처를 받더라. 늘 미안하고 고맙다."

 

-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지.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넘기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아니다. 나에게 한 마디 꼭 하고 넘긴다. '잘 좀 하라'면서(웃음)."

 

- 2세 계획은 어떤가.

="빨리 갖고 싶다. 1~2명 정도 생각하고 있다. 아들을 얻는다면 운동은 시키지 않을 것이다. 힘든 걸 아니까. '내 아들이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중·고교 시절 집을 떠나 혼자 야구를 했다. 많이 힘들었다. 물론 아들은 강하게 키울거다. 딸은 공주처럼 키우고 싶다(웃음)."

="오빠가 평소 아이들을 엄청 좋아 한다. 내 조카를 만나면 정말 잘 놀아준다."

 

- 마지막으로 팬들께 인사 한 마디.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올 겨울 준비 잘해서 내년에는 꼭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너무 많은 축하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빠를 잘 내조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웃음)."

강민호-신소연 커플의 교제 기간은 2년을 훌쩍 넘었다.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기억하고있을까.

 

첫 키스에 대한 질문을 묻자 신소연은 "이런 질문 나올 줄 알았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강민호는 자신있게 답을 적었다. 둘의 첫 키스는 장소는 강민호의 '차 안에서'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날짜는 기억하지 못했다. 교제 후 첫 야구장 데이트를 물었다. 강민호는 "나는 경기를 해야하기에 야구장 데이트는 꿈도 못꾼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처음 야구장에 응원을 온 건 2014 4월 잠실야구장이었다. ()소연이가 온 날 양상문 감독님께 인사드린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다. 신소연은 "오빠는 모든 음식을 다 좋아한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강민호는 '내가 경기 끝나면 '잡는 것'을 생각해보라"며 웃었다. 자주 찾는 고깃집 상호를 연상케 하는 힌트였다. 둘은 나란히 '고기'라고 적었다.

 

신소연은 "나는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탈이 나는 체질이었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선호했다" "오빠를 만나면서 육식으로 식습관이 변했다. 체질까지 바뀐 것 같다. ·돼지·닭 가리지 않고  다 먹는다"고 말했다. 강민호는 "소연이가 처음에는 고생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혼자 기본 2인분은 먹는다. 대식가"라며 혀를 내둘렀다. 신소연은 주먹으로 강민호를 때리며 응징(?)했다. 

첫 여행지는 강민호의 고향 제주도였다. 신소연은 "오빠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간 것이 첫 여행이었다. 부모님께서 너무 반겨주셔서 행복한 기억이 많다"고 전했다. 강민호는 "1박 이상으로 여행을 간 건 제주도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당일치기 첫 여행지는 거제도였다"며 기억력을 뽐냈다.

서로의 신발 사이즈를 묻자 거침없이 답을 적었다. 강민호는 "이쁜 운동화가 보이면 자주 사줬다"고 밝혔다. 신소연은 "나도 사주고 싶지만, 오빠의 발이 커서 신발 구입이 쉽지 않다. 이쁜 운동화는 큰 사이즈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Posted by Mr크리스티앙 :

드디어 손흥민 선수가 돌아오는군요. 주말에 축구보기 심심했는데, 손흥민 선수 돌아오면, 아스날과의 북런던 더비!! 너무 기대됩니다. 하지만 북런던 더비는 몸싸움과 신경전이 아주 치열하기로 유명한데, 손흥민 선수가 잘 버텨 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몸싸움이나 공수 스피드는 완벽하게 적은한게 아닌듯하고, 부상에서 막 돌아왔기때문에, 걱정입니다. 혹시나 이번 경기에서 안좋은 모습을 보여 슬럼프에 빠지지 않을까? 하구요, 그래도 이번 북런던 더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엄청난 스타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요즘 상승세인 아스날을 상대로 2골 정도만 넣어주면 좋겠습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국가대표팀은 오는 12일 미얀마(수원), 17일 라오스(비엔티엔)를 상대로 월드컵 2차 통합예선에 나선다. 대한축구협회는 2일 오전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3명의 선수명단을 발표했다. 관심은 발부상으로 결장하고 있는 손흥민의 복귀에 쏠렸다.

슈틸리케는 손흥민의 발탁배경에 대해손흥민은 지금 팀 훈련에 정상적으로 복귀했다. 다가오는 주중 유로파리그서 출전기회를 부여받을 것이다. 일단 명단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계속 이 선수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소속팀서 복귀했을 때 어떤 경기력을 보여주나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토트넘은 오는 16일 안더레흐트를 상대로 홈에서 유로파리그 2차전을 치른다. 1차전서 1-2로 패해 자존심을 구겼던 토트넘이 손흥민의 컴백으로 반격을 할 수 있을까. 공교롭게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은 외신을 통해 런던의 팬들에게 전해졌다. 팬들은 토트넘 공격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손흥민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열광하고 있다.

영국매체런던24’ 3일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을 인용해 손흥민의 복귀소식을 전했다. 이 매체는손흥민이 복귀한다면 아스날전을 앞두고 엄청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손흥민이 선발이 아니라 벤치에만 있어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손흥민의 복귀를 반겼다. 

슈틸리케는손흥민을 포함시킨 것은 미얀마전 선발출전 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당장 100% 도움을 주지 못해도 내년 3월에 좋은 모습으로 보답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만약 손흥민이 100% 회복하지 않았다면 토트넘도 차출불가 의견을 내놓을 것이다. 우리도 이 선수가 100% 회복되길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신중론을 펼쳤다.

Posted by Mr크리스티앙 :

안재욱의 아내 최현주에 대한 사랑이 참 좋아보이네요. 지주막하출혈 수술에서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참 다행이라고, 자신 때문에 아파하는 것을 보면 더 괴로울 거라고 하네요. 지금의 아내인 최현주 씨를 참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 보기 좋네요. 최현주씨 또한 날 사랑한 후 아프지 않으면 된다며, 안재욱을 위로해 줬는데, 늦게 결혼해서 시작한 만큼 아프지 말고 긴 사랑 나누었으면 합니다.



'힐링캠프' 최현주, 안재욱 지주막하출혈 수술에 "날 사랑한 후 아프지 않으면 돼"

배우 안재욱이 지주막하출혈 수술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2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500'(이하 힐링캠프)에서는 안재욱이 신혼부부 300쌍과 대화를 나눴다.

이날 안재욱은 지주막하출혈 수술에 대해 언급하며 "진짜 힘든 건 옆의 보호자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인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냐고 하는데 나는 아니라고 했다. 없던 게 너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사람이 나와의 어떤 운명 때문에 나를 만나서 나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면 내가 힘들었을 것 같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안재욱은 "최현주에게 신경 쓰인 적 없었냐고 물었는데 '날 사랑한 이후 아프지 않으면 되지' 하더라"면서 "우리가 시작한 이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랑 앞에서는 이미 지워진 흔적이 됐구나 싶어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와이프가 고마웠다"고 털어놨다. 

한편 안재욱은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배우 최현주와 지난 6 1일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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