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11시 '2015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이 개막하는 가운데 롤드컵 여신 조은나래의 과거 사진이 화제다. 

KBC 광주방송 아나운서이자 롤드컵 여신으로 유명한 조은나래는 과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맘에 든다"라는 글고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구분일정 (한국기준)장소
조별예선10월 1일 (목) ~ 4일 (일)프랑스 파리 르 독 풀먼
10월 8일 (목) ~ 11일 (일)
8강10월 16일 (금) ~ 19일 (월)영국 런던 웸블리 아레나
준결승10월 24일 (토) ~ 25일 (일)벨기에 브뤼셀 엑스포 아레나
결승10월 31일 (토)독일 베를린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O2 월드)


▲출처='조은나래' 인스타그램

공개된 사진 속 조은나래는 붉은색 비키니를 입고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롤드컵, 조은나래 몸매 대박", "역시 롤드컵 여신", "롤드컵 조은나래 너무 섹시한 듯"등의 반응을 보였다.

Posted by Mr크리스티앙 :




베스트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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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크리스티앙 :




포포투에서 선정한 Top 10 명장임.

영국 리그 소속팀 감독으로써의 업적을 기준으로 했고 무리뉴가 첼시로 다시 돌아오기 전에 선정한거라 Top 10 안에는 들지 않았음.

이 때까지만 해도 무리뉴가 EPL에서 보낸 시간은 3년이 전부였기 때문에 Top 10 후보에는 들었지만 아쉽게 탈락함. 무리뉴 외에도 빌 스트루스 (레인저스의 전설적인 감독), 돈 레비, 바비 롭슨 등이 Top 10 후보였음.

내용은 당연히 전부 포포투 쪽에서 쓴 것들로만 채웠고, 우승 기록은 가장 최근걸로 업데이트함.


10위



"감독님이 우쭐해 하던 내게 말씀하셨다. '칭찬과 꾸중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나'라고 말이다."

빌 니콜슨 (1919~2004): 토트넘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자 20세기 최초로 더블을 달성한 감독.

토트넘 팀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자 2차대전 참전경험을 비롯해 엄청난 지도력을 자랑했던 베테랑. 선수들에게 사랑을 받던 감독이기도 했고, 공격 축구에 대한 철학과 신념을 꿋꿋하게 지켰던 로맨티스트. ㅇ울한 시기에 토트넘을 맡았지만, 데뷔전에서 압승을 거둔 뒤 절대 뒤돌아보는 일 없이 앞만 보며 전진해나갔음.

빌 니콜슨은 축구라는 스포츠에 있어서 선구자였고 선수 시절에도 지도자 강습을 듣던 사람이었음. 축구를 연구하는 축구학자였고, 선수들의 체력과 컨디션 조절에 최대한 신경썼으며, 축구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던 사람이었음. 또한 사람이 워낙 순박하고 착해서 타팀 감독들에게도 정보를 주는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고 함. 

하지만 브라이언 클러프나 빌 샹클리와 같은 아우라를 풍기지는 않았음. 근데 애초에 그런 감독이 흔한 것도 아님. 동료 감독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았을 정도로 신사적인 양반이었음. 아쉽게도 60년대 이후에는 리그 우승이 없었고 말년에는 변화하는 시류에 적응하지 못해서 사임함.


토트넘에서 재임한 기간 (1958~74): 16년 (우승 13회)

1부 리그 우승 2회

2부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3회

리그 컵 우승 2회

커뮤니티쉴드 우승 3회

유로파 리그 우승 1회

UEFA컵 위너스 컵 우승 1회

*UEFA컵 위너스 컵은 1999년을 끝으로 폐지된 대회임.



클리프 존스 (웨일스의 월드컵 8강행을 이끈 토트넘의 전설적인 윙어/1935~): "빌은 선수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감독이었다. 오늘날 현대 축구에서 활약하는 명장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아. 프리시즌 기간에 훈련장에 들어서면 다른 나라에서 온 감독들의 빌의 훈련을 참관하기 위해 와 있기도 했다고. 그는 그 정도로 진취적인 사람이었어."


9위



"솔직히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우리가 위대한 감독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여유가 넘쳤으며, 서두르는 법 또한 없었다. 하지만 벵거 감독은 진정으로 축구를 이해하는 천재였다."

아르센 벵거 (1949~): 아스날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자 EPL 무패우승을 달성한 의문의 여지 없는 천재.

프랑스에서 건너온 한 키다리 프랑스인은 20개월만에 아스날에서 더블을 이룩했고, 잉글랜드 축구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하이버리의 지루한 팀을 잉글랜드에서 가장 매력적인 팀으로 변모시켰음. 지능적이고 원대한 꿈을 가진 감독이며, 벵거 감독이 없었더라면 아스날은 여전히 하이버리에서 경기하고 있었을거임. 오늘날 영국 축구계에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감독은 굉장히 드뭄.

처음 하어버리에 도착했을 당시 벵거에게는 엄청난 풀백과 골키퍼가 있었고,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특유의 공격 축구 전술을 도입, 잉글랜드 축구에 대대적인 파란을 일으킴. 재미있는 것은벵거 특유의 과학적인 접근으로 당시 30대 선수들의 경력을 연장시켜줬다는 점. (경제학자가 아니라 과학자 ㄷㄷ)

현재 전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이며, 지도 철학과 방식 모두가 선구자적이었다고 평가받음. 하지만 유럽 대회에서 큰 트로피를 들어올린 경험이 없다는 부분이 큰 약점으로 지적됨.


아스날에서 재임한 기간 (1996~): 19년 (우승 15회)

프리미어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6회

커뮤니티 쉴드 우승 6회

*아르센 벵거는 FA컵 역대 최다 우승기록을 보유한 감독임.



토니 아담스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와 더붙어 아스날 역사상 최고의 선수/1966~): "아르센은 선수에게 투쟁심을 불러 일으키는 카리스마형 명장은 아니다. 그렇다고 끊입없이 전술적인 혁신을 요구하는 사람도 아니지. 하지만 그는 축구라는 스포츠의 생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천재다. 그를 위해 뛸 수 있다는 것은 선수로써 아주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아르센은 아스날의 모든 코칭 스태프들과 선수들, 그리고 팬들에게 있어서 잊지 못할 선물과도 같은 존재지."


8위



"하버트 채프먼은 오늘날 현대 축구에서 일상처럼 자리 잡은 대부분의 요소들을 이미 90년 전에 떠올린 개척자였다."

하버트 채프먼 (1878~1934): 두 개의 다른 클럽에서 두 번 모두 우승을 이룬 최초의 감독이자 시대를 뛰어넘은 부정할 수 없는 천재.

한 개의 팀을 맡아 리그를 휩쓸었다면, 그것은 위대함의 작은 징표가 될 수 있음. 하지만 두 개의 클럽을 맡아서 똑같은 일을 해냈다는 것은 위대하다는 확실한 증거임. 영국 축구계를 이끌었던 모든 명장들의 부정할 수 없는 롤모델이자 대부와도 같은 인물.

당시 트로피 하나 없던 런던의 클럽 아스날이 채프먼이 부임한지 정확히 5년만에 영국 최강의 클럽으로 변모했음. 채프먼 감독은 새로운 방식을 위해서 모험을 겁내지 않았고, 단순한 전술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WM포메이션으로 대성공을 거뒀음. 전술적으로도 아주 유능했다는 반증임.

경기장의 야간조명이나 라커룸의 난방시설, 그리고 축구 유니폼의 등번호를 넣자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도 채프먼 감독임. 거기에 날씨가 좋지 않을 때에 공을 좀 더 구분하기 쉽도록 다른 색의 공을 쓰자던가, 골라인 선심을 두자고 가장 먼저 주장했던 사람도 채프먼 감독. 그야말로 선구자 그 자체임. 

하지만 채프먼은 20~30년대 시대의 감독이며, 에이전트나 보스만 룰, 스타 선수들에 관해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순위를 조금 낮춰서 8위로 선정함.


하더스필드에서 재임한 기간 (1921~25): 4년 (우승 3회)

1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아스날에서 재임한 기간 (1925~34): 9년 (우승 3회)

1부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클리프 바스틴 (채프먼 감독 시절 아스날의 주장을 맡아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선수/1912~91): "하버트에게는 위대한 아우라가 있었다. 그는 늘 기분 좋은 자신감에 차 있었고,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지. 그가 지닌 재능은 합당한 보상을 받아 마땅한 것들 뿐이었어. 만약 그가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영국의 총리까지 지냈을거야."


7위



"샹클리 감독님은 항상 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셨다. 늘 우리에게 '얘들아, 저 팬들을 봐라. 절대로 저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빌 샹클리 (1913~81): 오늘날의 리버풀을 만들어낸 감독이자 선수들에게는 공통체 의식과 책임감을 강조했던, 머지사이드의 쭈구리 리버풀을 유럽의 거함으로 키워낸 명장.

스코틀랜드의 한 탄광촌에서 태어난 샹클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배웠고, 이 덕분에 그는 타고난 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음. 머지사이드의 2인자 리버풀을 잉글랜드 1부 리그로 복귀시켰고, 이후 팀에게 3번의 리그 우승과 팀 역사상 최초의 유럽 대회 트로피인 UEFA컵 (오늘날의 유로파리그) 우승을 안겨줌. 

샹클리가 있었기에 리버풀은 진정으로 성공시대를 열 수 있었음. 선수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천하무적이라 믿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상대팀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상대방을 실제보다 약한 상대라고 믿게 만드는 능력까지 있었다고(...). 빌 샹클리는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유일무이한 존재였음.

기본적으로 체력을 굉장히 중요시했던 감독이었고, 90분간 뛰면서 태클할 수 있는 팀을 만들었다고 함. 짧은 말 한 마디로도 청중을 사로잡을 줄 알았던 언어의 마술사 (말은 갓저스도 잘하는데 지도력은 왜). 샹클리의 명언들은 오늘날까지도 축구계 최고의 명언들에서도 앞자리를 차지함.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이 말도 샹클리의 입에서 나온 명언 of 명언.


리버풀에서 재임한 기간 (1959~1974): 15년 (우승 10회)

1부 리그 우승 3회

2부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2회

커뮤니티 쉴드 우승 3회

유로파 리그 우승 1회



이안 세인트 존 (샹클리 감독이 리버풀에서 직접 선임한 최초의 주장이며, 리버풀 소속으로 리그 경기만 330경기 이상 소화한 전설/1938~): "안필드에 세워진 샹클리 감독의 동상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있어. '그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빌은 내 기억 안에서도 언제나 그런 사람이다. 난 샹클리와 같은 위대한 감독은 다시는 축구계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밥 페이즐리도 인정했잖아?


6위



"클러프는 그 특유의 거침없는 성격으로 노팅엄 포레스트라는 팀을 최고의 자리에까지 스스로 끌어올렸다."

브라이언 클러프 (1935~2004): 특유의 반항아 기질로 잉글랜드의 매력없는 팀들을 유럽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원조 스페셜 원.

더비 카운티와 함께 리그 우승을, 그리고 노팅엄 포레스트와 함께 리그 우승과 2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낸 명장. 잉글랜드의 작은 클럽 노팅엄 포레스트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이룬 것은 클럽의 팬들이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음.

하지만 클러프는 그것을 보란듯이 해냈고, 노팅엄 포레스트는 이 천재의 지휘 아래 유럽 챔피언스리그 2연패라는 말도 안 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해내고야 말았음. '빅 이어'를 2번 연속 들어올리기 위해 노팅엄의 선수들은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HSV의 케빈 키건을 꽁꽁 묶어버리는 엄청난 도전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고, 끝내 승리함.

클러프의 선수들에게 있어서 선택지는 그를 따르던가 혹은 쫓겨나던가 둘 중 하나였음. 클러프는 선수들에게 뛰어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감독이었지만, 때로는 그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선수들을 만났고 이 때마다 엄청난 시련을 겪음.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고, 노팅엄 포레스트는 그의 몰락과 함께 EPL에서 강등당함.

클러프는 유머 감각이 아주 뛰어났고, 카리스마가 넘쳤으며, 호전적이었고, 천재적이었음. 때로는 거만해보였지만, 그는 그 거만함을 뒷받침할만한 실력이 있었음. 챔스 2연패 이후 유럽 대회 정상은 커녕 10여년간 리그 우승 트로피조차 들어올리지 못했지만, 클러프의 엄청난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았음. 이 세상에 브라이언 클러프는 누가 뭐라고 해도 단 한 사람 뿐이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함.


더비 카운티에서 재임한 기간 (1967~73): 6년 (우승 4회)

1부 리그 우승 1회

2부 리그 우승 1회

텍사코 컵 우승 1회

와트니 컵 우승 1회

*텍사코 컵과 와트니 컵은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대회임.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재임한 기간 (1975~93): 18년 (우승 12회)

1부 리그 우승 1회

리그 컵 우승 4회

풀 멤버스 컵 우승 2회

커뮤니티쉴드 우승 1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앵글로-스코티쉬 컵 우승 1회

*풀 멤버스 컵은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대회임.

*앵글로-스코티쉬 컵은 앞서 언급한 텍사코컵의 후신 대회로,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대회.



마틴 오닐 (현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현역 시절 클러프 감독 밑에서 노팅엄의 챔스 2연패를 이끌었던 노팅엄의 전설적인 미드필더/1952~):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뛰던 나는 항상 브라이언과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선수와 감독이 언제나 칠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나 역시 알게 됐지. (넌 싸이코잖아) 때로는 어떤 사람이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깨닫는 것 같아. 물론 내가 브라이언과 함께 보낸 시간을 싫어했다는건 아니야. 오히려 사랑했지. 다만 돌이켜 보니 그가 얼마나 뛰어난 감독이었는지 진심으로 느끼게 됐다는 말이다."


5위



"램지 감독님의 사무실에 가야할 때면 늘 짜증이 났지만, 나올 때는 항상 감독님이 옳았고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나 자신을 발견했었다."

알프 램지 (1920~99): 3부 리그에 속해있던 허름한 클럽을 맡아 정확히 6시즌 뒤에 1부 리그 우승이라는 기적을 쓴 명장이자 잉글랜드에게 월드컵 우승을 안겨준 축구종가의 전설.

만약 누군가가 뼝글랜드를 이끌고 다시 월드컵에서 우승한다면 그 대표팀 감독은 누구보다도 위대한 명장이라는 칭송을 받을거임.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미 이 미라클한,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낸 명장이 있다는 사실이며, 그 사람이 바로 알프 램지라는거임. 램지 감독은 확실히 전술적으로 천재는 아니었지만, 굉장히 실용적인 축구를 구사했다고 알려져 있음.

램지는 입스위치 타운을 이끌고 3부, 2부, 1부리그 우승을 차례로 6년만에 모두 경험해본 감독이기도 함. 입스위치가 처음 1부리그로 승격했을 때, 모든 축구 팬들은 그것이 한계일거라고 생각했음. 하지만 그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입스위치 타운은 AV를 상대로 리그 우승을 확정지으며 이변을 연출함. 1963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램지는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말했고, 정말로 잉글랜드는 우승을 차지함.

비록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타고난 재주꾼은 아니었지만, 램지는 클럽과 대표팀 양쪽 모두에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팀을 발전시키는데 적임자였다고 평가받음. 램지의 팀 구성 능력이 높게 평가받는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1970년의 잉글랜드 대표팀은 1966년의 잉글랜드 대표팀보다 더 뛰어난 팀이라고 평가받기도 함.


입스위치 타운에서 재임한 기간 (1955~63): 8년 (우승 3회)

1부 리그 우승 1회

2부 리그 우승 1회

3부 리그 우승 1회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재임한 기간 (1963~74): 9년 (우승 1회)

월드컵 우승 1회



레이 크로포드 (알프 램지 감독이 직접 영입한 입스위치 타운 역사상 최다 득점자/1936~): "내가 1958년 입스위치 타운에 처음 입단했을 때에는 알프 램지 감독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었어. 하지만 그가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감독인지 깨닫는데에는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입스위치의 사람들은 그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고, 모두들 진심으로 기뻐했었어.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램지 감독님은 괜찮은 활약을 했잖아?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으니까."


4위



"버스비 감독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우리 모두가 진정한 긍지를 갖도록 한 점이다. 그리고 그는 패배를 인정할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매트 버스비 (1909~94): 맨체스터 내에서조차 최고의 팀이 아니었던 맨유를 25년 이상 지휘하며 유럽의 정복자로 탈바꿈시킨 전설적인 명장.

매트 버스비 감독은 1952년에 전쟁 피해로 스타디움조차 없이 망해가던 맨유를 이끌고 클럽 역사상 최초의 리그 우승을 이룬 괴물과도 같은 양반임. 하지만 당시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대부분의 선수들은 노장 선수들이었고, 버스비는 즉각 리빌딩을 진행해 성공적으로 팀을 바꿔내는데 성공함. 그리고 이 선수들은 버스비에게 리그 우승으로 화답함.

하지만 불행하게도 뮌헨에서의 사고는 버스비의 팀을 완전히 앗아가는 비극을 남겼음. 하지만 버스비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고, 1968년 5월 29일, 맨유는 챔스 결승전에서 벤피카를 4-1로 꺾으며 10년 전 자신의 목숨까지 앗아갈 뻔했던 그 참사를 추모하고 맨유를 유럽 최고의 자리에 오르도록 함. 그 어떤 만화보다도 극적이고 아름다운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닐 수 없음.

맨유를 거함으로 발전시켰고 잉글랜드 클럽의 감독으로써는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감독. 더붙어 현대적인 맨유의 기틀을 세웠고 그 누구보다도 유럽 대회에 클럽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았던 감독임. 이 때문에 축구협회의 만류를 무시하고 유럽 대회의 출전을 감행하기도 했고, 이는 오늘날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이 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재임한 기간 (1946~69, 1970~71): 25년 (우승 13회)

1부 리그 우승 5회

FA컵 우승 2회

커뮤니티 쉴드 우승 5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패디 크레란드 (버스비 감독 아래서 맨유 소속으로 리그에서만 304경기를 소화한 1968년 챔스 우승 멤버/1939~):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자마자 하고 싶었던 일은 버스비 감독과의 포옹이었다. 감독님은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연 채 서있으셨다. 눈은 거의 감겨 있었는데 눈물이 고여있으셨지. 그 순간, 우리 선수단은 우리의 승리를 그 누구보다 기뻐해준 한 명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서있었다."


3위



"축하하네 조크 스테인. 자네는 이제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었군."

조크 스테인 (1922~85): 영국 출신으로는 최초로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재패한 명장이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스승 겸 롤모델.

조크 스테인은 진정한 전설임. 잉글랜드 북쪽으로 조금만 국경을 벗어나면 스테인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축구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함.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셀틱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며 가장 위대한 길을 걸었던 양반임. 스테인이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된 지금까지도 셀틱과 스코틀랜드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있음.

스테인은 1967년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면서 영국 클럽 감독으로써는 최초로 챔스를 우승한 감독이 됨. 이 시즌에 셀틱은 쿼트레블을 달성했는데 더 놀라웠던 점은 팀원들의 출생지가 모두 셀틱 파크 반경 30km안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모두 지역 유소년들로 일궈낸 업적이었던 것임. (뻥글의 월드컵 우승도 꿈이 아닙니다 여러분!)

스테인과 함께 했던 시간은 셀틱의 팬들에게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클럽의 가장 위대한 시간이자 아름다운 시간이었음. 셀틱에서 스코틀랜드 리그 9연패를 이루면서 역사를 다시 써버렸음. 선수들 역시 조크 스테인을 큰 형님처럼 사랑했고, 스테인은 큰 무대에서 선수들이 가진 모든 것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함. 그것도 아주 멋진 스타일로.

진취적인 사고를 가진 양반이었고 늘 자신만만했었음. "늘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승리했는가다"라는 명언도 남김. (그래서 퍼거슨이 틈만 나면 라커룸에서 그 지X을...) 그리고 1967년, 스테인은 마침내 인테르가 낳은 불세출의 명장 엘레니오 에레라를 압도하는데 성공함. 동세대 감독들보다 한 시대를 앞서나갔던 감독이고, 샹클리부터 퍼거슨까지, 스테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감독을 찾기가 힘듬.


던펌린 에슬레틱에서 재임한 기간 (1960~64): 4년 (우승 1회)

스코티쉬 컵 우승 1회


하이버니언에서 재임한 기간 (1964~65): 1년 (우승 1회)

썸머 컵 우승 1회

*썸머 컵은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대회임.


셀틱에서 재임한 기간 (1965~78): 13년 (우승 25회)

스코틀랜드 1부 리그 우승 10회

스코티쉬 컵 우승 8회

스코틀랜드 리그 컵 우승 6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빌리 맥닐 (셀틱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역대 최고의 캡틴으로 꼽히는 스코틀랜드의 전설/1940~): "스테인 감독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선수들에게 있어서 '큰 형님'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항상 으지를 가지고 선수들을 독려했고, 또 욕심을 내라고 지속적으로 주문했다. 어떤 감독들은 선수들에게 '피치에 나가서 즐겨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조크 스테인 감독님은 절대 그러는 법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경기나 시즌이 끝난 뒤에 즐기라고 했다. 최고가 된 후에 즐기라는 뜻이었지.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큰 형님 '조크'가 확립한 이 정신은 셀틱 파크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2위



"낡은 코트 하나와 납작한 모자. 페이즐리 감독님은 언제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수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밥 페이즐리 (1919~96): 리버풀의 물리치료사에서 스승 빌 샹클리를 뛰어넘은 영국 축구계의 부정할 수 없는 전설, 그리고 괴짜.

오늘날까지도 몇몇 축구 팬들은 페이즐리의 업적이 위대한 전임자인 빌 샹클리의 덕택이라고 말함. 하지만 수많은 감독들이 위대한 전임자의 그늘에 가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걸 알아야함. (이를테면 맨유의 지니어스 모씨라던가) 밥 페이즐리가 리버풀의 감독으로 재임한 기간은 총 9년임. 그런데 페이즐리는 그 9년 동안 챔스를 3번 재패함.

챔스 도사로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카를로 안첼로티가 챔스 3회 우승이라는 업적을 감독 경력을 시작한지 19년만에 달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페이즐리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음. 페이즐리는 선수 기강을 다스리는데도 도사였고, 안필드에서는 오로지 트로피만이 전부라는 분위기를 만들었었음. FA컵 우승이 없는게 유일한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 미친 우승기록이 있음.

페이즐리는 거칠고 투박했던 당대의 감독들과는 확실히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음. 페이즐리는 겸손한 성격이었지만 다소 괴짜스럽고 독특했으며, 샹클리와 같은 카리스마를 갖춘 감독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았음. 하지만 그는 결코 희미하지 않은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겼고, 어수룩한 말투로 선수들에게 칼날같은 지시를 내려 승리했음.

감독 데뷔 첫 시즌에는 다소 부진했지만, 페이즐리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곧바로 천명함. "팀이 이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기에 나는 무리를 주지 않고 모두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더니 몇몇 이들이 나를 만만하게 본 모양이다. 나는 이제 내 뜻대로 할 것이며, 내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 이후 19개의 트로피가 리버풀로 향했고, 리버풀은 영연방 최고의 빅클럽으로 우뚝 서게 됨.


리버풀에서 재임한 기간 (1974~83): 9년 (우승 20회)

1부 리그 우승 6회

리그 컵 우승 3회

커뮤니티 쉴드 우승 6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3회

유로파 리그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이안 러쉬 (리버풀 역사상 최다 득점자이자 라이언 긱스, 마크 휴즈 등과 더붙어 웨일스가 낳은 역대 최고의 재능 중 하나/1963~): "경기를 이기고 트로피를 들어도 그에게 들은 칭찬은 없었어. 우리는 다만 더 많은 우승컵과 득점을 위해 달렸을 뿐이야. 그래서 페이즐리 감독님과 함께 웸블리에서 보낸 마지막은 더 특별했었지. 우리는 그 때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직접 단상으로 올라가셔서 우승컵을 받으시라고 설득했었어. 팬들 앞에 서는거니까 그 놈의 낡은 모자랑 코트는 벗어놓고 가시라는 말씀도 드렸지. 늘 겸손하셨고, 화려함을 극도로 싫어하셨어. 하지만 그 분과 함께 들어올린 타이틀의 수는 굉장했고, 그의 팀의 일원이었다는 것이 지금도 자랑스럽다."


1위



"올드 트래포드 재직기간 27년, 알렉스 퍼거슨은 과거의 영광이나 쫓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클럽으로 변모시켰다."

알렉슨 퍼거슨 (1941~): 리누스 미헬스와 더붙어 축구사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

알렉스 퍼거슨은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럽의 감독이었지만, 그 자신이 맨유를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럽으로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함. 그는 피치 위와 밖 둘 다에서 클럽을 견인했었음. 스코틀랜드 리그 시절에도 에버딘을 이끌고 리그를 양분하던 레인저스와 셀틱을 제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었음. 그만큼 여러모로 역대급인 감독임.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도 퍼거슨을 따라잡을 수 있는 감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함. 맨유에서 25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면서 항상 새로운 팀을 구성했고, 변화하는 축구계에 대처했었음. 그 어떤 슈퍼스타 선수나 에이전트도 퍼거슨을 앞지를 수 없었다는 말임. 퍼거슨은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리그 13회 우승을 해냈고, 끝끝내 숙적 리버풀의 우승 기록을 제껴내는데 성공함.

17번의 리그 우승과 14번의 국내 리그 컵 우승을 달성했던 양반이지만 챔스 역시 2번 우승한 먼치킨임. 최상위 수준에 있는 클럽과 최고의 감독을 통틀어 그 누구도 퍼거슨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음. UEFA컵이 우승이 없다는게 유일한 흠이라면 흠. 어리고 투지 넘치는 선수들을 지도하는 방법과 슈퍼스타들을 다루는 방법 모두를 알고 있었던 감독이었고, 심지어 칸토나까지 다룰 줄 알았음. (히츠펠트는 에펜베르크를 다뤘습니다만?)

헤매던 팀이었던 맨유를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변모시켰고, 매트 버스비를 뛰어넘었음. 자상하다가도 엄처안게 무서운 모습을 모두 보여주는 감독이었고, 자신과 마주하는 모든 사람하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재주를 지녔었음. 우승기록은 보너스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음?


세인트 머렌에서 재임한 기간 (1974~78): 4년 (우승 1회)

스코틀랜드 1부 리그 우승


에버딘에서 재임한 기간 (1978~86): 8년 (우승 11회)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3회

스코티쉬 컵 우승 4회

스코틀랜드 리그 컵 우승 1회

드라이브로 컵 우승 1회

UEFA컵 위너스 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드라이브로 컵은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대회임.

*UEFA컵 위너스컵은 1999년을 끝으로 폐지된 대회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재임한 기간 (1986~2013): 27년 (우승 38회)

1부 리그/프리미어리그 우승 13회

FA컵 우승 5회

리그 컵 우승 4회

커뮤니티 쉴드 우승 10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UEFA컵 위너스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 1회

*알렉스 퍼거슨은 잉글랜드 리그와 커뮤니티 쉴드 최다 우승기록을 보유한 감독임.



브라이언 롭슨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유에서 '캡틴 판타스틱'으로 활약했던 잉글랜드 대표팀 출신의 전설적인 미드필더/1957~): "나는 알렉스 퍼거슨과 비견될 만한 감독은 지구상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매트 버스비,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하버트 채프먼, 아르센 벵거 모두 위대한 감독들이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항상 위대한 팀을 만들어냈고 맨유에서 모든 것을 이뤘지. 심지어 스코틀랜드에서도 레인저스와 셀틱이 양분하던 양강 체제를 깼잖아? 퍼거슨 감독은 언제나 지금이 아닌 다음, 더 먼 미래를 바라봤던 사람이었어. 그리고 늘 성공했지. 결국 그는 위대한 승리자로 남았어."


다 쓰는데 더럽게 힘들었네요 ㅋㅋㅋ



출처: 싸커라인

Posted by Mr크리스티앙 :